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기
'징크스(Jinx)'는 불길한 징후, 불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다. 이것을 안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이걸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런 식의 자기만의 룰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징크스는 개미잡이라는 새에서 비롯된 단어라고 한다. 이 새는 고대 서양에서 점치는데 자주 활용했는데 생김새가 마치 뱀과 비슷해서 서양에서는 불길함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징크스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징크스라면 살아가는데 플러스알파 요소겠지만, 이걸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옭아매고 있다면 이런 징크스는 타파해야 한다. 사람들 중에서는 이거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고, 동티가 난다느니 저주받는다느니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징크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개인 차원을 넘어 직업군 중에서도 유난히 징크스가 강한 직업군들이 있다. 그리고 유명인들 중에서도 유달리 징크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징크스들을 알아보고, 만일 징크스가 내 삶에 지장을 준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같이 알아보고자 한다.
직업군들 중에서는 유난히 징크스가 강한 직업들이 있다. 주로 생명과 신체에 큰 위협이 되거나, 업무량이 과도할 정도로 많은 직업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예전 80년대까지만 해도 광부들의 사고 소식이 신문지면에 자주 오르내리고는 했다. 가스 폭발, 지하수 유출, 갱도 붕괴, 화재, 유독가스 분출 등 광부들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광부들은 목숨을 걸고 갱도에서 하루하루를 일해야만 했다. 당연히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과연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는 주걱으로 4번 밥을 뜨면 안 된다 (죽을 사 한자에서 비롯)
- 광부의 신발은 항상 신발끝이 방 쪽을 향해야 한다.
- 광부 출근길에 여자는 절대 광부를 앞에서 가로지르면 안 된다.
- 광부에게 아내가 도시락을 건넬 때는 반드시 광부 손에 직접 건네어야 하며 파란색이나 빨간색 보자기로 포장해야 한다.
- 갱도 안에서 휘파람이나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사실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내용들이다. 어떤 것은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은듯한 징크스들도 있다. 그만큼 광부들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열악했고, 조그마한 위험이라도 피하고 싶어 했던 절박한 심리를 느낄 수 있다.
매일 운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좌식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은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취객에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이다. 이렇다 보니 택시기사들도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 몇 명이 타고 있는지 누가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귀신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라고 한다. 자리가 여유가 있으면 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 아침에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 (안경 쓴 사람은 예민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 얼굴 형체가 흐릿한 사람은 태우지 않는다 (귀신 가능성 때문이라고 한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다 보니 정체가 불확실하거나, 예민해 보이는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징크스가 아닐까 싶다.
'광산에서 사고 나면 시체는 찾지만, 바다에서 사고 나면 시체도 못 찾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배 위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항상 생명을 담보로 해야만 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금기들이 만들어지고는 했다.
- 아버지와 아들이 한꺼번에 고기 잡으러 나가서는 안된다.
- 여자는 절대 배 위에 올라가서는 안된다.
- 생선을 먹을 때는 절대 뒤집어서 먹어서는 안 된다.
(생선은 배와 비슷하게 생겨서 배가 뒤집힌다는 의미로 느낌)
- 날씨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는다.
- 배 위에서는 절대 뛰지 않는다.
스포츠 스타들 중에서도 자기만의 금기나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선수 시절 코트에 들어갈 때는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꼭 반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는 반드시 공을 정확히 10번 튀긴 뒤에 슛을 날렸다. 그렇게 했을 때 성공했던 경험이 있어, 이후부터는 그의 철칙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팀이 승리했으면 다음 경기 때도 그 행동을 반복한다고 한다. 호주머니에 500원 동전을 두 개 가지고 있었는데 그날 그 팀이 승리했다면 다음에 패배할 때까지 늘 500원 동전 두 개를 주머니 속에 간직했다.
SK 감독 시절 팀이 20연승을 할 때는 계속 수염을 기르기도 했다. 면도를 안 했을 때 승리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란 팬티를 입은 날 승리한 뒤로는 연승이 끝날 때까지 그 팬티를 갈아입지 않은 일은 유명하다. 양말은 항상 왼쪽부터 신어야 하고 19층아파트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한 번이라도 서면 다음 경기에 졌기 때문에 웬만하면 걸어서 19층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타석에서 타격 전에 늘 헬멧을 벗고 냄새를 킁킁 맡던 박한이 선수, 노스 캐롤라이나대 시절 입던 반바지를 늘 속에 입고 뛰던 마이클 조던, 경기 전에 꼭 토를 해야만 했던 NBA의 빌 러셀 선수 등 징크스를 가진 선수들이 참 많았다.
심리적인 강박, 두려움, 잘하고 싶은 의지가 결합된 결과이다. 사실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아무리 잘하는 타자라도 3할 5푼 이상을 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늘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고 투수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상과 같은 돌발변수와도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환경이기에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 한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동아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절박함이 온갖 징크스를 만들어낸다. 주변 동료들이 그런 징크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 나도 안 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이런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된다.
금기나 징크스가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고 자신감을 주는 징크스라면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다. 그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속박되어 이걸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곤란하다. 한 장로님께서 간증을 하신 것이 기억난다. 그 장로님 집안은 일 년에 제사를 34번 지내는 종손 집안이었다고 한다. 한 번이라도 그걸 거르면 집안 조상귀신들이 벌을 내린다고 집안 어른들이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어릴 때는 진짜 그런가 보다 하고 따랐지만 점차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제사 한 두 번 안 지냈다고 벌을 내리는 조상이라면 그 조상은 제대로 된 사람(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다)이 아니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지나친 신념이 되어버리거나, 마치 안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여겨지거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징크스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곤란하다. 새벽 4시에 깨어 고함 한 번 크게 질러줘야 그날 운수가 좋다 이래버리면 주변 이웃들이 참 괴로워진다. 징크스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그 선을 넘어가는 징크스는 나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징크스는 없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바람직하다. 굳이 무언가에 속박되고 억눌려서 조마조마 지내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징크스가 있다면 이렇게 징크스를 관리하자.
징크스는 대개 심리적인 현상이다. 해당 행동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징크스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평소대로 행동하는 연습을 해보자.
예전에 어떤 방에만 들어오면 뒤에 귀신 그림자가 보인다고 그 방에는 얼씬도 못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친구가 그와 둘이서 그 방에 들어갔다. 한참 뒤에 그 친구는 슬며시 나갔고 그 사람은 덜덜 떨며 그 방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귀신 그림자가 또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들어오더니 전등 밑에 달려있던 지네를 치워버렸다. 지네가 전등에 달라붙을 때마다 그림자가 마치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친 것처럼 비춘 것이었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덜덜 떨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징크스는 별것 아닌 일에 과민반응을 하면서 생겨나게 된다.
징크스가 된 행동 대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을 만한 새로운 의식(ritual)이나 습관을 만들어보자.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 1층부터 20층 사무실까지 무조건 계단으로 걸어가야 그날 일이 잘 풀린다고 믿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20층까지 걸어가면 누가 그 모습을 좋게 보겠는가?
무리하게 걸어가지 말고 차라리 퇴근 시간 이후에 미친 듯이 20분만 헬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으로 바꿔보자. 이렇게 했는데 다음날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린다면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퇴근한 이후에 실컷 뛰고 샤워하고 집에 들어가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징크스를 없애기 힘들다면 도움이 되는 징크스로 한 번 바꿔보자.
자꾸 징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있다. 하루 1만보를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1만보를 채우지 않은 날은 칵테일 만들듯이 폰을 마구 흔들고, 영하 15도의 혹한의 날씨에도 밖에서 동네를 활보하고 다닌다.
아예 폰에 있는 걸음수 체크 앱을 없애버리자. 그러면 2~3일은 허전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걸음수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눈에 안 보이면 집착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징크스를 만드는 물건을 없애버리자.
늘 주머니 속에 부적을 넣고 다니고 책상 서랍에는 달마도를 넣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부적과 달마도가 없으면 귀신이 틈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면 한 번 물어보자. 그 부적과 달마도 갖고 다닌 이후로 당신 일이 과연 잘 풀렸는가? 아파트 값이 뛰기라도 했는가? 직장에서 조기 승진이라도 했는가? 하다 못해 주식이나 코인에서 재미라도 봤는가? 아니라는데 내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는 걸 수 있다 (농담이다)
징크스랑 한 번 반대로 해보자. 기분 나쁘게 생긴 부적이랑 달마도는 치워버리고 살아보자.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내 마음에 평온을 준다면 치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영적으로 좋지 않은 물건들은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을 추천드린다. 징크스랑 과감하게 반대로 해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을 한 번 가져보자.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징크스가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인형들은 절대 엎드려 있거나 벽을 보고 있으면 안 되었다. 편안하게 누워 있거나 앞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인형들이 왠지 앞을 못 보고 있으면 답답할 것만 같았다. 그 답답함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기분이 오랫동안 찝찝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미친 듯이 회사에 출근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인형들은 방치하고 출근했다. 기분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만든 규칙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구나'
징크스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개성으로 볼 수도 있다. 굳이 번거롭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그냥 놔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수많은 속박들에 갇혀 살고 있다. 집은 자가로 갖고 있어야 하고, 학교는 어디 이상을 졸업해야 하고, 직업은 전문직이어야 하고.. 아무리 신경 안 쓰고 살려고 해도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세상이 강요하는 속박이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만든 속박을 여기에 더 추가한다? 그건 아니다.
웬만하면 징크스를 갖지 말고 탈출하자. 우리는 살면서 징크스 말고도 신경 쓸 것들이 참 많다. 개인적으로 징크스를 가져봤기 때문에 그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입장에서 조언을 드린다.
"징크스야!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