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대상을 본보기 삼아 가혹하게 다루는 리더
장 상무는 '람보', '불도저' 이런 별명을 가지고 있다. 후퇴가 없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스타일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하나 더 있다. '미친개', '독사'였다. 한 번 물면 절대 놔주지 않는 무시무시한 성격 때문이었다. 모든 팀원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에게 걸려들면 뼈도 남아나지 않았다.
그가 자주 쓰는 주특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시범케이스' 활용 전략이었다. 팀에서 만만하고 힘없는 사람 하나를 택해서 그 사람만 죽도록 패는 방법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었다. 사람들이 다 있는데서 큰소리로 그 사람을 부르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먼지 털듯 잡도리했다.
사람들은 '나는 저렇게 당하지 말아야지'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팀원들은 장 상무에게 마치 신하들이 파라오에게 대하듯이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 보고를 할 때도 극존칭을 써가며 "제 의견을 아뢰옵니다"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표현을 썼다.
그렇게 시범 케이스를 활용하면서 공포를 이용해 군기를 잡는 것! 그게 장 상무의 승진 공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장 상무에게 부드러운 리더십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일 뿐이었다.
장 상무가 즐겨 사용한 '시범 케이스' 즉 본보기로 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는 모습은 리더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내 말 잘 듣지 않으면 너희도 이 사람처럼 될 것이라는 무언의 협박인 셈이다. 그만큼 시청각 교육의 효과는 크다. 그러나 속된 말로 '한 두 명을 조지는' 이런 방식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이번 리더가 되면 안 되는 사람 시리즈는 '고선지 장군'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실 고선지 장군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라 잃은 고구려인으로서 중앙아시아 땅을 휩쓸며 기개를 떨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사실 고선지 장군은 정복지를 잔혹하게 다스렸다. 위의 장 상무처럼 시범 케이스를 활용하여 석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화친까지 어겨가면서 석국의 왕을 사로잡아 처형당하게 했다. 다른 나라들에게 너희도 내 말 잘 듣지 않으면 이 꼴이 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
고선지 장군의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범 케이스를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고구려 장수였으나,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이후, 그는 머나먼 당나라 땅에 포로로 끌려오게 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다. 포로들이 다시 뭉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서로 떨어져서 살아가게 했다. 고선지의 아버지도 먼 지방으로 홀로 떨어져 살아가야만 했다. 고구려 출신이라는 차별 속에 고선지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무관으로서 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유명한 장수가 되어 있었다.
당시 당나라 황제는 현종이었다. 양귀비의 남자로 유명한 그는 영토 확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선지는 현종 황제의 명령에 따라 당나라 서쪽을 책임지는 장수인 절도사가 되어 마침내 중앙아시아 정복길에 올랐다.
그 길은 쉽지 않았다. 기나긴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야만 했다. 행군 도중 지쳐 쓰러지고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는 병사들이 수두룩했다. 더 이상 진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무럽, 한 무리의 적군들이 다가왔다.
이 말을 들은 당나라 군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자기들의 총사령관이 적국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기운을 내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고선지의 작전이었다. 항복했던 적군들은 사실 당나라 군인들이 소발률국의 군복으로 갈아입은 것이었다.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그렇게 작전을 짠 것이었다.
그렇게 사기가 오른 당나라 군은 소발률국을 정복했고 마침내 지금의 티베트에 해당하는 토번왕국까지 정복하게 되었다. 고선지는 중앙아시아 개척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당시 고선지에게 항복했던 중앙아시아의 소국들은 무려 72개에 달했다.
이 정도로 만족할 당나라 현종이 아니었다. 마침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석국에 진귀한 보물들이 많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종은 고선지에게 석국을 비롯하여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나머지 왕국들도 정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아랍 지역에는 이슬람교가 창시되어 한참 힘을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아바스 왕조는 동쪽인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뻗어가고 있었다. 중앙아시아를 두고 두 강대국인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가 격돌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고선지는 석국을 본보기로 삼아 주변국들에게 경고를 주고자 했다. 석국은 일찍이 당나라와 평화조약을 맺고 당나라 편에 서있던 나라였다. 그러나 고선지는 석국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국가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번 원정의 목적 중 하나가 석국이 가진 보물을 차지하는 것에 있었기에 석국은 시범 케이스로 삼기에 제격이었다.
그는 평화조약을 어기고 석국을 침공했다. 석국에서는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안전보장을 요청했으나, 고선지는 거절했다. 석국은 초토화되었고 왕과 세자는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심지어 석국 왕은 항복을 했음에도 처형당하고 말았다.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게 당나라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위해 시범 케이스로 석국을 가혹하게 다뤘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고선지와 당나라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반감을 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석국의 세자가 극적으로 탈출하고 말았다. 세자는 중앙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며 복수하자고 호소하였다. 이 기회를 놓칠 아바스 왕조가 아니었다. 자기들이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 같은 편이 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수많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서기 751년, 고선지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탈라스 평원으로 향했다. 탈라스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이때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나라와 연합하기로 했던 국가들 중 카를룩군이 배신을 하고 전투 중 당나라 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혹하게 자신들을 다루는 당나라에 품고 있던 반감이 그 원인이었다.
팽팽했던 전투는 카를룩군의 배신으로 삽시간에 전세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고선지의 당나라 군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후퇴하게 되었고, 중앙아시아 지역은 통째로 아바스 왕조에 넘어가게 되었다.
고선지는 시범 케이스로 석국을 가혹하게 다스림으로써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통제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의 전략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째로 뺏기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직장상사들 중 일부가 시범케이스로 한 두 명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에는 사람들이 겁을 먹고 내 말에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만드려는데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는 "소수의 몇 사람을 가혹하게 다룸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낸다면 통치가 쉬워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도 리더의 눈 밖에 나면 저렇게 될까 봐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리더들은 구성원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보다, 누군가 처벌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하게 구성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 내에 느슨한 분위기가 있다고 판단할 때, 본보기를 통해 군기를 확실하게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상사 본인의 입지가 불안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강력하게 각인시키고 싶을 때 이런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왕'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족이었던 그는 늘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 유대인들이 감히 자기의 정통성을 갖고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그는 유대인들의 조그마한 반항에도 잔인하게 다스렸다.
그들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고자 한다. 사실 이런 사람들의 내면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본인이 두려울 때, 오히려 더 가혹한 처벌을 통해 부하 직원들이 자신의 약점을 파고들지 못하게 방어막을 치게 된다.
이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할 때, 만만한 대상을 찾아 모든 잘못을 그 사람 탓으로 돌리게 된다. 감정 쓰레기통처럼 자기 분노를 다 희생양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줄 인격적인 상처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장의 성과나 질서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참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하나 있다.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다. 이 말을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은 때려야 비로소 말을 듣는다고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자주 하던 말이 이어진 것이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던 시어머니가 가장 무서운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신병 때 얼차려 많이 당했던 병사가 무서운 선임이 되고, 어렸을 때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부모를 닮아가게 된다.
그 상사 역시 과거에 가혹한 환경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 때는 더했다", "원래 이렇게 해야 정신을 차린다"는 식의 잘못된 신념이 내면화된 상태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가혹한 모습을 보이는 리더 밑에서는 어떤 피해를 받게 될까?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되고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내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 팀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팀을 편안한 곳으로 느끼게 된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집을 생각해 보자. 그곳에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
편안함이 느껴져야 나도 다양한 내 의견을 제시하고 내 노하우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데, 심리적 안전감이 부족한 곳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지시에 조금이라도 다르게 따른다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은 반대 의견이 묵살된 독재체제로 흐르게 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조금씩 아픈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나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감정이 예민해지고 별 것 아닌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짜증을 내게 된다. 몸과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이다.
제때 치를 받지 못하면 증세는 심해진다. 수면제나 우울증 치료제에 의존하게 되기도 한다.
다른 곳으로 떠날 곳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 팀을 떠나게 된다. 육아휴직을 쓰기도 하고, 다른 팀에 사정사정해서 옮겨가기도 한다. 아예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난히 이탈자가 많고 팀원들 얼굴이 자주 바뀌는 조직이 있는데 이런 가혹한 리더 밑에서 신음하는 곳이 대표적이다. 팀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팀으로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에게 오랫동안 시달리면 나 역시 피폐해지게 된다. 리더가 떠날 날만을 기다리다가는 같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효과적인 전략이 중요하다. 형편없는 리더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리더의 가혹한 행위가 ㄴ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리더의 부적절한 관리 방식 때문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리더가 저렇게 시범케이스를 활용하여 가혹하게 대우하는 것은, 리더의 불안이나 통제 욕구가 투사된 것이다. 이런 리더는 공포에 질린 팀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비난을 받을 때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보다, 사무적이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리더의 공격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가혹한 대우는 단순한 잔소리를 넘어 직장 내 괴롭힘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가 많다. 이 경우를 대비하여 증거 확보가 필요하다.
사적 심부름, 회사 내규에 반하는 지시, 폭언 등이 벌어진 일시, 장소, 주요 내용, 목격자 등 상세 정보를 기록하자. 이런 리더들은 갖은 이유를 다 붙여서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나를 몰아세우게 된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도록 내가 완수한 업무 데이터와 성과를 근거자료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런 리더들은 본보기로 삼아 괴롭히는 직원들을 다른 직원들로부터 고립시켜 통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 아니면 너를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내 말 잘 들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한다. 그래서 동료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가혹한 대우를 받는 동료가 있다면 지지해 주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주자. 조직 내에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큰 힘이 된다.
혼자 목소리를 내면 묻히기 쉽다. 생각을 같이하는 여러 명이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전략을 꼭 가져가야 한다. 이런 리더들은 약점을 잡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내가 몇 번 늦게 출근한 적이 있다면, 근무시간에 다른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보고 있던 적이 있다면, 점심 먹고 사무실에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면 그걸 일일이 다 기록해서 내 약점을 잡는다. 만에 하나 내가 신고할 것에 대비해서 입막음 용도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행동에 주의하자.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가혹한 리더는 일부러 지시를 모호하게 내린 뒤 나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묻기도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자기 멋대로 자기 지시를 정의래리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시를 받으면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말씀하신 내용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습니까?"라고 재확인하여 기록을 남겨야만 한다. 그리고 진행 상황을 리더에게 수시로 공유하자. 리더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내가 불필요하게 비판받는 것을 차단하자.
이런 리더가 변할 수 있을까? 절대 변하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히려 자신의 이런 모습이 자신을 리더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절대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리더의 행동이 조직 문화로 고착화되었다면 조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 정신건강부터 지키도록 하자. 도저히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면 팀을 옮기거나 이직하자. 쓰레기 하치장에 꽃을 심고 향초를 놓는다고 해서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는 없다. 그 환경이 싫으면 내가 준비해서 떠나야 한다. 언제까지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계 유민으로서 머나먼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기개를 떨친 명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그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 그는 고구려계이기는 했으나 고구려 출신이라는 의식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이미 고구려는 멸망한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정복 과정에서 크나큰 실책을 저질렀다. 조그만 왕국들이 많은 데다가 당나라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운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는 이 문제는 시범 케이스를 활용하여 해결하고자 했다. 주요 타깃이었던 석국을 가혹하게 대함으로서 다른 국가들이 감히 당나라에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처음에는 공포를 통한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주변국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그는 신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우방국의 배산으로 탈라스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획득했던 중앙아시아 지역 상당 영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난 한 놈만 패!' 이런 생각으로 시범케이스를 활용하는 리더들이 아직도 있다. 팀원들에게 공포를 불어넣어 복종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내가 왕처럼 떠받들어지고 싶어서, 과거에 나도 그렇게 당했는데 효과가 좋아서 등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고선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회가 되면 눌려있던 사람은 저항하고 반항하게 된다. 침묵하는 사람들도 그저 눈치나 보며 혼나지 않을 생각만 할 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려하지 않는다. 괜히 튀어봐야 맞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은 단기간에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결국 가라앉는 배처럼 서서히 침몰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시대가 변했다. 까라면 까야하는 방식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시범 케이스를 활용해서 팀을 장악하려는 리더를 막기 위해서는 튼튼한 방패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기록 잘하기, 든든한 동료 만들기, 공격의 빌미 주지 않기이다. 그렇게 강력하기 그지없는 공포스러운 리더로부터 나를 지켜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