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잡담 2025년 02월호
봄을 기다리며
- 봄을 닮은 남프랑스 여행 -
[ 프로듀서·사진작가 최주영 ]
그래도 봄이 오고 있다.
유난히 하 수상했던 2024년 겨울이라 ‘이게 맞나?’ 싶었지만, 얼음이 녹고 있다.
보이는 대문마다 얼른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을 써 놓아야 할 것만 같다.
유난히 따뜻했던 날씨 탓에 날씨만큼은 겨울 같지 않았지만,
이 날씨가 오히려 남프랑스에서는 보통의 겨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에도 우리나라 가을 같은 날씨.
따뜻한 목도리 하나 걸치면 든든한 남프랑스의 매력적인 장소와 추천 여행지를
콕 집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Cannes (깐느) & Île Sainte-Marguerite (일 상트 마르게리트)
눈부신 지중해 앞에서 플래시가 연신 터지는 레드 카펫. 우리에겐 영화제로 아주 잘 알려진 ‘깐느’를 이번 여행의 첫 도시로 선택한다. 물론 한 여름의 깐느가 제일 아름답겠지만, 오히려 조용해서 색다른 깐느를 보고 싶다면 겨울에 찾아가는 것도 좋다.
도시 전체가 산책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아름다운 이곳. 어딜 방문해도 좋지만, 일부러 시간 내서라도 ‘일 상트 마르게리트’(Île Sainte-Marguerite)에 다녀오기를 권한다. 도시 안에서 바라보는 깐느보다 도시 밖에서 전체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깐느 풍경이 훨씬 더 아름답다! 투명하다 못해 마시고플 정도로 푸르른 바닷물을 넘어가니, 고흐도 아마 예찬했을 듯한 산과 마을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출항하고 얼마 안 되어 벌써 풍경이 웅장해진다.
멀리서 깐느의 또 다른 진가를 실컷 만끽했다면, 배 타고 나온 김에 섬 구경도 자세히 해보자. 섬 입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깐느 풍경 앞에 유유자적하는 요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네 개의 ‘레앙’(Lérins Islands) 섬 중 가장 큰 섬인 이곳은 깐느 항구에서 배를 타고 약 15분이면 갈 수 있다. 이 섬은 정글 같은 산책로와 더불어 이곳에 있었던 ‘포트 로열’이라는 감옥으로도 유명하다.
필자는 이곳에 방문했던 날 거의 하루 종일 동안 혼자 돌아다니는 바람에, 일 상트 마르게리트 섬에서는 감옥에서 우러나오던 형용하기 힘든 ‘그 기운’에 절로 몸서리쳤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감옥이 아닌 박물관 등의 관광지로 잘 꾸려져 있긴 하지만, 별일 없다면 꼭 쌍으로 방문하시길!
Nice (니스)
남프랑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 ‘니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니스 카니발’이 열리는 여름에는 숙소 한 칸 잡기조차 어렵겠지만, 겨울에는 걱정 없다. 한인 민박도 꽤 가성비 좋은 선택 중 하나다.
니스 하면 ‘자갈 해변’, 영국인의 산책로라고도 할 수 있을 그곳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숨 막히게 예쁜 남프랑스 바닷가에 펼쳐진 자갈 해변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갈 틈으로 노래하는 파도 소리는 평생 들어도 좋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자갈이 인공적으로 깔린 것이라는 점은 꽤 재미있다.
자갈 작품을 잘 감상했다면, 해변 동쪽 끝에 있는 ‘Bellanda Tower’에 꼭 올라가 보자. 니스 해변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까지 느린 걸음으로도 5분이면 충분하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내가 니스에 왜 왔는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Saint-Paul de Vence (생 폴 드벙)
혹시 니스의 인파에 지쳤다면, 생 폴 드벙같은 인근 소도시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렌터카가 최고의 선택이지만, 버스로도 충분하다. 한인 민박에 머문다면 프라이빗 투어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사진기 없이 돌아다니면 ‘유죄’다. 필름 카메라는 그 반대인 무죄를 넘어 ‘원시적 불능’일 정도로 최고의 준비물이다. 중세 도시를 그대로 간직한 ‘중세 감성’이 살아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예술적으로 유난히 한적한 분위기 탓인지, ‘피카소’와 ‘마티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마음도 빼놓았다고 한다. 특히, 샤갈은 이곳에서 20년을 살았고 이곳에 묻혔다. 남프랑스의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묻힌 그의 묘 위에는 꽃 대신 자갈이 놓여있는데, 유대교 전통이라고 한다. 골목 전체가 따뜻한 햇빛에 감싸여 하나하나가 그림으로 바뀐다. 군데군데 있는 보물 같은 아트샵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ze (에즈)
생 폴 드벙이 ‘샤갈의 도시’라면, 에즈 빌리지는 ‘니체의 도시’다. 지중해 절벽 420미터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13세기에 로마의 침략을 피해 자리 잡았던 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새 같았던 환경 탓일까. 니체는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에게 실연당한 후 이곳으로 와 가장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의 소요(逍遙)는 오솔길도 만들게 했다.
살짝 더 차가워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에즈의 전망대에 앉아 있으면, 점점 노랗게 물드는 ‘바다 윤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수도 있다. 고요하기만 한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서글피 들리기도 한다.
Monaco (모나코)
센치해진 기분을 뒤로 한채, 이제 부의 도시 모나코로 떠나보자. F1, 관광, 카지노로 유명한 ‘국가’다. 모나코 갈 때는 꼭 니스에서 버스 타고 가야 한다.
가는 길에 지중해 절벽을 따라 펼쳐지는 광경은, ‘엉 티켓 실 부 플레’(Un ticket, s'il vous plaît : 티켓 한 장 주세요)라 말하고 탔던 버스를 열 번이고 더 타고 싶게 할 정도다. 그냥, 말도 안 되는 풍경이다. 살랑거리는 지중해 햇빛에 하나도 짜지 않은 바람의 내음, 곳곳에 스튜디오처럼 자리 잡은 집들의 창문에 보이는 ‘빨간 꽃들의 노래’. 우리가 상상하는 남프랑스의 이상향 그대로다.
모나코에 도착하면, 온몸으로 ‘아! 부자 동네구나!’가 느껴진다. 사람이 정말 없는 겨울 시즌에는, 붐비지 않는 도시가 자본주의적인 차가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렇다고 도시의 색마저 차갑지는 않다. 각양각색의 요트가 수도 없이 펼쳐진 항구도시 가운데로 황금처럼 노란 빛이 내리쬔다.
카지노와 관광이 주 수입원이라고 잘 알려진 이곳은,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자동차 브랜드들의 딜러 매장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해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천국이기도 하다. 하나 재밌는 것은, 이제 카지노나 관광은 모나코 주 수입원의 4퍼센트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나코는 제조업에 투자하면서 그 제조업으로 생산한 상품을 통해 수입원의 구조를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1인당 GDP가 세계 최고인 것은 여전히 변함없다.
‘니스’, ‘깐느’, ‘생 폴 드벙’, ‘에즈 빌리지’, 그리고 ‘모나코’까지.
지나가는 겨울 고즈넉한 남프랑스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짐 싸고 떠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