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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음악, 에릭 사티의 3개의 짐노페디

by 아이비





"내 꿈은 내가 만든 음악이 오페라극장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서 울려퍼지는 것이다."








에릭 사티: 세 개의 짐노페디

Erik Satie: 3 Gymnopédies



파리 음악원에서 교수들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던 에릭 사티.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군 입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자발적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군대에 가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지요. 처음 넉 달 동안은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3년이란 시간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밤, 사티는 상의를 벗고 야외에 벌러덩 드러누워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고야 마는데요(!). 결국 이 일로 기관지염에 걸려 3개월간 휴가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기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1887년 11월의 일이었죠.



군 제대 후 그가 향한 곳은 예술가들의 거리로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이었습니다. 학교와 군대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는 카페와 카바레에 드나들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파트리스 콩테미뉘 드 라투르라는 스페인 출신 시인을 만나 좋은 친구로 지내기도 합니다.




검은 고양이와 짐노페디



그의 또 다른 인연은 카바레 "검은 고양이(르 샤 느와르)"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돌프 살리스라는 인물에 의해 1881년 지어진 이 카바레는 겨우 30명 들어갈까말까한 단란한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카바레 "검은 고양이" (이전 후의 모습)



르네상스 시대 느낌이 나는 가구와 투박한 의자,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민 창문, 곳곳에 널려있는 고양이 그림, 갑옷과 가면, 모조 태피스트리...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대의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죠. 해가 저물면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야심차게 준비한 컨텐츠가 있었으니 바로 그림자극이었습니다. 사티의 검은 고양이 첫 방문은 그림자극의 첫 개시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검은 고양이의 호스트이자 극장 감독인 살리스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라투르의 말에 따르면 사티의 친구가 살리스에게 그를 소개시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짐노페디스트 에릭 사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사티가 딱히 내세울만 한 직업이 없었기에 본인 스스로를 "짐노페디스트" 라 칭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했다는 것이죠.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살리스가 짐노페디스트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놀래며 "그것 참 멋진 직업이군요!" 라고 말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는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티는 검은 고양이의 피아노 연주자로 고용되었습니다. 사티는 카바레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옛날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날마다 몰려드는 예술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영감을 찾았습니다. 라투르는 지금껏 수줍고 점잖던 사티가 본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유머감각을 되찾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적인 변화가 찾아오니 외양도 자연스레 바뀌었습니다. 머리와 수염은 자르지 않고 내버려두었고, 옷장 안의 옷가지와 신발은 다 내놓았습니다. 린넨 대신 플란넬 셔츠를 입기 시작했으며 긴 모자와 프록코트를 사들였지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런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그의 곡들 중 하나가 바로 <3개의 짐노페디>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낭만주의 사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짧고 소박한 음악작품. 문득 사람들이 이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아니, 피아노곡인데 소나타도 녹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주곡도 아니고. 대체 이건 뭐야? 이상한 화음을 쓰네? 제목은 또 무슨 뜻이야?



정말, 그러고보니 제목인 '짐노페디'는 무슨 뜻일까요? 이 단어는 그리스어 '짐노페디아(고대 스파르타에서 젊은이들이 나체로 춤을 추는 연례행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라투르의 시 <고대인>에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비스듬히 그림자를 자르고 명멸하는 회오리

밝게 빛나는 판석 위에 금빛으로 흘러넘치네

호박색 원자들이 서로를 불 속에 비추면서

짐노페디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

라투르, <고대인> 중



짐노페디와 사라방드, 모두 사티의 작품에 등장하는 제목들입니다. 이 시의 일부와 짐노페디 1번이 같은 잡지에 실려 출판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라투르가 사티에게 <짐노페디>의 영감을 주었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대인>이 먼저 쓰여졌는지, <세 개의 짐노페디>가 먼저 작곡되었는지에 대한 선후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롤랑 마누엘은 사티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를 읽고 제목을 지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티가 몽마르트르에서 지내며 발전시킨 이색적인 스타일을 음악에 녹여냈다는 사실입니다. 각각의 곡은 왈츠 박자에 세 개의 유기적인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기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불협화음의 사용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오른손으로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듯 흐릅니다. 고요하며 평화로운 동시에, 가슴 저미는 듯한 슬픔과 우울함도 담고 있죠. 단 몇 개의 음만으로 이토록 깊은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검은 고양이에서 발간하는 저널에는 짐노페디 3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 불행한 신사의 탄생을 맞이한 19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 중 하나로 여겨질 만 하다."



피카소가 그린 에릭 사티의 초상화





출판과 오케스트레이션



사티의 짐노페디 세 곡은 각각 따로 출판되었습니다. 1번이 라투르의 시와 함께 공개된 이후 3번도 같은 해(1888년)에 나왔지만 2번은 1895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세 개의 합본이 출판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렵 사티는 4살 연상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



드뷔시는 사티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드뷔시가 사티의 짐노페디를 관현악 편곡해주었다는 사실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스위스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 귀스타브 도레는 당시 두 사람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코안경을 낀 사티는) 피아노 앞에 앉았어. 그의 연주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마치 대충대충 치는 것처럼 들렸지. 드뷔시가 말했어. "에이, 그게 아니잖아. 내가 자네 음악이 어떤 건지 제대로 들려주지." 그의 신비스러운 손 아래로 <짐노페디>의 정신이, 모든 색채와 뉘앙스를 간직한 채 경이롭게 펼쳐졌어. 나는 말했지. "이제 바로 그 방식대로 오케스트레이션하기만 하면 되겠군."



드뷔시는 당연히 동의했고, 만약 사티가 괜찮다고 한다면 당장 관현악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사티는 물론 승낙했죠. 드뷔시는 1번과 3번을 관현악 편곡하였고, 이 버전은 1897년 2월 도레의 지휘 하에 공연되었습니다.








No.1

Lent et douloureux (느리고 고통스럽게)







No.2

Lent et triste (느리고 슬프게)







No.3

Lent et grave (느리고 장엄하게)







기타 편곡 버전





곡 자체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공부하거나 일하면서 듣기에도 좋습니다. 유튜브에 1시간, 심지어 10시간 반복 버전까지 나와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가만히 듣고 있자면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지고 잠이 솔솔 옵니다. 인생에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그 배경음악으로 깔릴 법한 곡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야 감미로운 음악의 대명사로 침대 광고 등 온갖 매체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말 시대를 한참 앞서간 것이죠. "나는 늙어빠진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 는 그의 말은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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