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부모 찬스 없이 시작하다

이보다 더 소박할 수 없는 결혼 생활 시작

by 온행


11년 전 우리는 29살, 31살 꽃다운 나이에 가족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우리 둘은, 딱 3천만 원씩을 들고 가정을 꾸렸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시절부터 ‘결혼은 네 돈으로 하라’고 엄포를 내렸었고, 시댁 쪽은 형편이 어려워 남편이 3년 동안 번 돈을 다 모아 지방에 작은 집을 마련해 드린 상황이었다.

보탬을 받기는커녕, 남편이 어깨에 부모님을 얹고 나에게 건너오는 판이었다.

넉넉지 않은 시작임을 알았고, 다른 상황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친구들과 비교과 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난 이런 마음이었다.


❝ 항상 비슷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비슷한 이유로 헤어진다. 그래서 연애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진짜 내 가정을 꾸려서 인생 시즌2를 시작하고 싶다. 어차피 할 결혼, 시기를 늦춰서 이득 될 것도 없다. 남편은 가진 건 없지만 열등감이 없고 무던한 성격에 성실한 사람이다. (사랑에 빠진 이유를 적자면 낯간지러우니 적지 않겠다.) 부모님에게 해 드릴만큼 다 해드렸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새로 꾸릴 가정이 ‘착한 아들 노릇’보다 더 중요함을 안다. ❞


나는 첫 발령지에서 일하던 5년 차 공무원, 남편은 신입사원으로 이직하여 자리를 잡은 지 2년 남짓 되던 해였다.

내가 가진 3천만 원으로 모든 결혼 준비 비용을 처리했다.

뭐는 반반 하고, 뭐는 남자가 하고, 뭐는 여자가 하라는 식의 매뉴얼이 흔하게 돌아다녔지만, 우리는 그저 ‘실용성’만을 추구했다.

나중에 다 합칠 돈인데 뭐 하러 따로 쓰고 따로 계산한담? 그냥 심플하게 결혼 준비는 싹 내 돈으로.

남편이 가진 3천만 원은 전세금에 보탰다.

남편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금리 1%대의 대출을 한도액까지 받아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집은 신림동의 신축 투룸 빌라였다.


단군 이래로 전세가 귀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역전세다 뭐다 하는 건 체감적으로 20년 성인으로 산 인생 중에 하루 이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에는 빌라 전세마저 귀해서 다 지어지지도 않은 신축 건물의 뼈대만 보고 계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5번의 이사를 했다.

3번의 아파트 매매 등기를 쳤고,

나는 인사 발령으로 근무지를 2번 옮겨 가며, 15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남편은 그 사이 4번이나 이직을 했다.

결혼 10년 차가 되던 작년, 우리는 첫 신혼집 전세금의 딱 10배가 되는 금액에 아파트를 매수했다.

대출을 제외한 순자산은 20배 정도 늘어났다.

2명에서 4명으로 가족은 2배 늘어났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이자 위대한 업적이다.)


지금의 형편과 비교해 보면,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작은 살림이었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우울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넓어질 우리의 세계가 기대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달까.

돌이켜보면 반짝반짝한 시절이었다.


아직 부자라 하기엔 부족하여 '이렇게만 하면 나처럼 부자 될 수 있어요'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조금은 부족한 채로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의 삶의 기록을 적어내려 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과 병행하여 아이를 키우고, 자산을 채우고 늘리는 일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 아님을,

그저 약간의 희망과 제대로 된 방향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임을 터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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