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습관화할 수 있는 절약 습관 쌓기

by 온행


집에 대한 내 첫 기억은, 한때 00 공단으로 불리던 서울 변두리의 단칸방이다.

1980년대,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밀려들던 시절이었고, 나의 부모님도 그중 하나였다.

24살에 부모가 된 시골 출신의 블루 칼라 노동자.

그 젊은 부부는 결혼 20여 년 만에 서울 대로변의 6층짜리 건물을 사들이며 ‘건물주’가 되었고, 마침내 삶의 여유를 찾았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채 마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분투하던 젊은 부부가 그만한 자산을 일구기까지 얼마나 진한 땀과 눈물이 있었을지는, 몇 페이지를 써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나였기에, 절약은 유전자에 새겨진 유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살 땐 그 쓰임새를 꼼꼼히 따져보고, 가격이 적당한지 비교해 보는 것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빈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늘 날아오던 꾸중 때문에, 어디서든 스위치를 끄고 다니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친정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세트 옷 한 번 못 사줘 본 적 게 늘 아쉬웠다지만, 덕분인지 나는 구색을 갖추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필요한 것만 사고, 쓰임이 다 할 때까지 쓰고, 능력이 되면 고쳐 쓴다.


그렇게 천성이 알뜰한 나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돈 버는 맛’과 ‘돈 쓰는 맛’을 즐기며 살기도 했다.

일하기 싫은 날이면 짬짬이 명품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훑어보다가 만만한 가격대의 물건을 눈여겨봐 놓고, 보너스가 들어온 달이면 백화점에 가서 하나씩 사보기도 했다.

데이트를 위한 치장에도 애를 썼고, 휴일이면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녔다.


그런 내가 결혼 후에 딸깍 짠순이 스위치를 켜서 푼돈 모아 목돈을 만든 걸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결혼 후에도 우리는 휴일이면 나들이를 다니고, 외식도 하고, 배달도 시켜 먹었다.

다만 소비와 지출에 대해 남편과 의견을 조율하고, 돈에 관해 많은 것을 읽고 보고 공부하며 기준을 정립했다.

나는 단지 목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소비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목돈 만들기를 위한 절약 모드에 들어가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절약에도 '요요 현상'이 온다.

몇 년 전 내 주변에서 바디프로필이 대유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곁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식단 조절을 하고, 출근 전후로 헬스장에서 PT를 받던 지인들은 몇 달의 고생 끝에 끝내주는 인생샷을 남겼다.


바디프로필을 향한 여정은 저지방 고단백의 식단으로 몸 안을 가꾸고, 운동으로 근육을 돋보이게 만드는 과정이니, 그 자체로는 권장할 만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달간의 극단적인 관리와 운동 후, 그 사진 속 모습을 유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소수는 그보다 못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멋진 몸을 유지했다.

절반 정도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상태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인해 방탕한 자세로 먹고 마시며 생활습관을 흐트러트리더니 영 운동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몸이 됐다.


수험생 시절 본능을 억눌러가며 공부에 매진했던 학생들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보상심리'에 이끌려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 공부, 절약은 모두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활동이지만,

이를 위해 평생 극단적인 노력을 쏟아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소비에 관한 모든 것을 ‘습관대로'하려고 한다.


빈 방에 불을 켜두지 않고, 자기 전에는 콘센트 전원을 모두 끈다.

옷은 계절마다 사지 않고, 버릴 옷이 생기면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산다.

음식 배달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로 조절하고, 최대한 직접 요리해서 먹는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흥미 위주로 담지 않고, 쿠팡이나 오아시스마켓에서 주기적으로 필요한 재료만 구입한다.

핸드폰 요금은 알뜰폰 요금제를 사용한다.

호캉스나 감성 독채 숙소 여행은 하지 않는다. 휴식은 집에서 충분히 하고, 여행은 경험을 위해 떠난다.

용건 없는 카페 방문은 자제하고, 커피나 음료는 되도록 집에서 만들어 마신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책값도 만만치 않다. 집에 책도 쌓여간다. 그래서 도서관의 희망도서 신청과 상호대차를 적극 활용하고, 다시 읽을 만한 책만 구입한다.


이 습관들은 내가 로또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습관이란 무엇인가?

컵을 들 때 새끼손가락이 올라가거나,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여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밴 행동이다.

습관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노력 없이는 고치기도, 만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요현상을 부르는 무리한 절약을 피하고, 습관화할 수 있는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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