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3천만 원씩을 들고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인생 2막을 시작한 우리.
없이 시작한 신혼살림이었지만 서투르게나마 하나하나 배워가는 게 마냥 즐거웠다.
그리고 나는 아껴 쓰고 부지런히 모아서 야무지게 불려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도 허영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까지 작은 원룸에서 살며 자동차 없이 검소하게 지내는 모습으로 친정 엄마에게 점수를 따기도 했다.
다만 내가 약간의 개입을 해야 했던 사고방식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바로 “내가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써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일주일간 고생스럽게 일했으니, 주말엔 치맥 정도 시켜 먹는 게 나를 위한 보상이야. 1년 동안 내가 회사에다 벌어다준 만큼 받은 성과급이니 이걸로 스스로에게 좋은 거 하나 사줘도 되지. 이런 식의 자기 위안.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나는 이걸 셀프 보상이자, 중복 보상이자, 하지 않아도 될 지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값은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보상받는다.
그런데 내가 그걸 핑계로 스스로에게 치맥을 하사하는 것은 추가 보상을 셀프로 지급하는 것이자, 하지 않아도 될 지출을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내가 받은 보상을 깎아먹는 일이다.
성과급도 마찬가지다.
1년 치 고생한 값을 직장에서 성과급으로 보상해 주었는데, 그 핑계로 내가 큰돈을 지출하니 나는 또 내가 받은 보상을 깎아먹은 것이다.
개그맨이자 사업가 황현희 씨가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을 우연히 보고 매우 큰 공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식의 셀프 추가 보상을 ‘낮은 수준의 중독'이라 칭했다.
성실하고 유능한 내가 진정으로 받아야 하는 보상은 이런 ‘낮은 수준'이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 합당한 평가에 근거하여 받은 승진 기회,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의 이직, 보상을 모아 자산을 취득하는 것, 혹은 자산을 처분하여 큰 현금을 손에 쥐는 것, 노후 준비를 마친 후 이른 퇴직, 자존감 풀충전, 가족의 자랑이 되는 것이 내가 받아야 할 진정한 보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셀프 추가 보상을 핑계로 추가 지출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 치킨은 먹고 싶어서 먹는 것뿐이다. 야식을 자주 먹는 것은 생활 습관에도 안 좋으니, 횟수를 조정해서 먹고 싶을 때 먹자. 비싼 물건은 정말 필요해서 사는 것이다. 아무리 비싸도 정말 필요하다면 사야지. 다만 필요성이 떨어지는 물건을 ‘나를 위한 선물’로 구입하지는 말자. ❞
그리고 또 한 가지 논쟁 거리는 남편의 특이한 ‘물건 계산법’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50만 원짜리 소파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파는 매일 쓰는 거잖아. 50일 동안 매일 쓰면 하루에 1만 원이고, 100일 동안 매일 쓰면 하루에 5천 원이야. 500일 쓰면 하루에 1천 원이니까 2년만 넘게 써도 하루에 몇 백 원 꼴이잖아. 그냥 사.”라는 식이다.
처음에는 참 신박한 계산법이다 싶었다.
나와 같이 전전긍긍하지 않고 속 편하게 사라고 부추겨주니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마음이 통하는 부부라도, ‘뭐 그런데 돈을 써’라는 식의 비난 섞인 참견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매사에 그런 식으로 계산하는 버릇은 가난을 부른다.
왜냐하면 이 계산법대로라면 세상에 사치스러운 물건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고급 국자를 떠올려보자.
국자는 스테인리스 소재에, 열이 전도되지 않으며 손에 자연스럽게 잡히는 손잡이가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1만 원 정도라면 불만 없이 값을 지불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계산법대로라면 그 국자가 30만 원, 300만 원이라도 아깝지 않게 지불하게 된다.
매일 쓰는 물건인 데다가 4인 가족의 한 끼 식사에만 4번을 사용하지 않는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아서’ 혹은 ‘물건값이 물건의 효용에 걸맞지 않아서’라는 이성적인 판단도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비싸도 매일(혹은 오래) 쓰기만 하면 거의 공짜가 되기 때문이다.
가난을 부르는 계산법 쓰지 말고,
물건이 왜 필요한지, 가격이 합리적인지를 설득시켜!
몇 번의 대화 끝에, 이런 식의 계산법은 우리 가정에서 사라졌다.
팍팍한 일상에서 내가 나에게 선물 좀 주었다고 해서 개념 없는 소비자라며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수에 넘치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설득해 보려는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런 셀프 보상과 가난을 부르는 계산법이 나의 습관이자 루틴이 되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힘들게 습관으로 장착한 절약 마인드가 무색해져 버리지 않는가.
나는 더 가치 있는 보상을 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이자, 이성에게 판단을 맡기는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