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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Jan 09. 2017

예쁜 말 모음

곱씹을수록 달다.

예쁘게 말하기는 참 어렵다. 관사 빼먹지 않고 영작하는 것만큼이나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괜히 곱씹으며 기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들은 예쁜 말 몇 뭉치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감상하자.


#1 "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

일하던 친구가 힘들었나 보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바르셀로나에서 두어 달 정도 쉬고 있다.

살사 댄스를 배우고,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어느 카페에서 어느 커피를 마실지 고민한다. 그 일상이 마음에 제법 들었나 보다. 통화하면서 흥얼거리더니 갑자기


"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


저런 문장을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생경했다. 부모님과 통화하면 항상 '밥뭇나, 돈은 있나'라는 내용으로 대화가 끝나는 나로서는, 삐뚤빼뚤 번역한 책만큼이나 어색했다.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놀리려다가 꾹 참았다. 잘 참았다.


열댓 시간 일하고 퇴근한 후에 한 통화였는데, 묘하게도 저 문장에 내가 힘이 났다.



#2 "태호는 착하고, 부지런하고, 긍정적이다"

통화하던 중에 그 친구가 전혀 맥락 없이 스페인어 책을 폈다.  예문 하나를 읊어주겠다며 중얼거리길래 뜻을 물어보니

"태호는 착하고, 부지런하고, 긍정적이다."


내가 엄청나게 착하고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다. 요즘 체력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저런 모습을 잠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3 "재밌게 사시는 것 같아요"

1년 전에 호주에서 설렁설렁 돌아다닐 때 알게 된 분이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본 적은 1번인데 길어야 5시간, 대화한 적은 다 합쳐서 10시간도 안 될 것이다.


잠시 시간이 맞아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곧 가서 보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나더러


"재밌게 사시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의 내 일상이 처음에는 버거웠지만 이제는 적응하고 젖어들었다. 어색함이나 거리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흥미진진하고 재밌다고 생각한 적이 썩 많지는 않다. 다만 계획대로 일이 되어가거나, 돌발 상황을 대처해가는 내 모습을 볼 때는 쾌감이 있다. 영어로 이메일을 써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전달하고 싶던 어감에 얼추 맞는 표현이 떠오를 때는 그만큼 기쁘다.

이 정도의 생활도 누군가는 재밌게 사는 걸로 본다는 점이 새롭다. 내 생활도 제법 괜찮다고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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