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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김성철

아무도 없는 방에 전화라도 주실래요

텅 빈 방 안엔 고구마순만 요동치네요

그렇게 고구마순만 바라보다 보면

꺾인 줄기에서 피어오르는 고구마의 삶을 봐요

투명한 페트병 따라 동심원 그리는 뿌리


뿌리는 꼭 쥔 채 무얼 기다리고 있을까요?

꺾인 줄기에서 다시 오르는 고구마순은

화엄에 오르고 있어요

가파른 계곡 짚고 서서

2평 남짓한 방 짊어진

창틀 위 푸른 손


당신은 고양이를 닮았어요

오후 2시, 햇볕 널린 담벼락 사이를 조심스레

오르내리는 새하얀 고양이

만지려 들면

꼬리 세워 뒤돌아서는


고양이 덩치만 한 그늘이 빳빳하게 마르면

잘 개켜서 서랍장에 넣을 수 없을까요?

녀석은

밤이건 낮이건

바라보며

울부짖고 갈갈대며

혼자서도 거뜬합니다

잠시만,

누군가 왔어요


아무도 아니었어요

지나가는 아이들의 장난이었겠죠

기대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상처받기 쉬운 날인가 봐요


호우성 소나기가 지나갔고

아지랑이는 골목과 골목을 돌아 큰길로 향해요


아스팔트는 뜨거운 게 좋아요

저 치열함 속의 궤적들

상상만 해도 임신될 듯한 마찰의 일상들


오후 2시,

고구마순 자라는 2평 남짓한 방.

당신은 혹시,

열쇠 하나 줍지 않으셨는지




두 번째 시집 <풀밭이라는 말에서 달 내음이 난다>를 냈습니다.

많은 고민이 담겼고 고민에 더해 새로운 시도도 해봤습니다.

산문 같은 시편을 시리즈로 담아보기도 했고

여전히 당신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구입처

http://aladin.kr/p/V4d2Y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2662050

https://link.coupang.com/a/baIw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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