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타임 형이 늦게 오는 바람에 원래 보다 4시간이나 더 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애매한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했지만, 환승 후 막상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저 흑인 옆자리 밖에 없었다. 일부러 그러진 않았지만, 두 자리에 걸쳐 앉은 모습을 보고 괜한 도전 의식이 생겼다.
"Execuse me."
흑인 스웨그로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지만, 최대한 아무 일 없었던 듯 이야기를 건넸다. 다행이다. 앉지 못했다면 계속 서서 가야 할 판이었다. 뻘쭘해서 인사 치레로 몇 마디 건네었더니 신나게 대답을 한다. 난 그냥 예의상 한 말인데, 피곤했다.
몇 정거장 후 그 흑인은 내렸고, 다시 지하철은 정적이 흘렀다. 슬쩍 옆을 봤는데,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가 드라마 속 실연당한 여주인공처럼 우수에 차서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엄마를 닮았다. 정장을 입은 모습이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일이라 결혼식은 아닐 테고, 면접이 있었나? 근데 왜 저렇게 우울해 있지? 면접에서 떨어졌나?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도착역이다.
얼른 집에 가서 라면하나 끓여 먹고 스타나 한판 해야지 하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아까 봤었던 그 여자가 나보고 영어 과외를 해달란다. 뭐지? 신종 사기꾼인가?
만약 명함을 내밀었다면 대번에 무시하고 도망갔을 테지만, 서류봉투의 한 귀퉁이를 찢어서 정성스럽게 전화번호를 주는데, 왠지 믿고 싶었다. 왠지 만나고 싶었다.
다음 타임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자꾸 이렇게 늦을 거야? 확 나도 일찍 가 버린다."
"미안해, 대신 이번 주에 술 한잔 살게."
"술은 됐고, 현금을 줘 ㅋㅋ. 아, 나 오늘 지하철 타고 오는데 누가 나보고 영어 과외 해달래 ㅋㅋ"
"올, 그게 말이 돼? 사기꾼 아니야?"
"그건 모르겠고, 사람이 착해 보이긴 했어."
"너한테 반해서 그런 식으로 연락처 준거 아냐?"
"에이 설마, 됐고. 앞으로 또 늦으면 시급으로 따져서 별도로 청구할 테니 알아서 해!"
나한테 반했다고? ㅋㅋㅋ 재밌네
뭐 별게 있겠어, 한번 해볼까?
그날 저녁 정성스럽게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첫 과외 일정을 잡았다. 마침 토요일이었기에 여자친구에게 토요일에는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웬 과외냐며 물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그랬더니 여자친구는 크게 화를 내며,
"너 그거 과외 가기만 해 봐. 그럼 나 너랑 헤어질 거야!"
또 시작이다. 툭하면 화를 내고 화를 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홧김에 던져서 깨진 핸드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자친구는 21살이지만, 12살이랑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귀찮아서 그냥 알겠다고. 대신 이번 주는 일요일에 보자고 했다.
토요일에 그 여자를 만났다. 가까이서 보니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긴 했는데, 그게 스타일 때문인지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었다. 어차피 공부하려고 만난 사이니 자세히 보기도 민망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모임을 같이 가자고 했고, 어차피 과외도 한다고 한 거, 술은 못 마시겠냐 싶어 흔쾌히 따라갔다. 먹다 보니 11시가 되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어, 집에 가는 길"
"아까 왜 전화 안 받았어?"
"아, 나 과외하느라 무음으로 했는데 그걸 안 풀었었네."
"뭐? 과외? 나한테 안 한다고 했잖아."
"아, 그래도 부탁을 한 건데 한 번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됐어, 이제 오빠 우유부단함도 질렸어. 이제 연락하지 마."
분명 내 잘못이 맞긴 하는데, 왠지 미안하지 않았다. 그냥 정리해야 할 일을 정리한 느낌. 조금 아쉽긴 했다. 민지는 예뻤고, 밝았고, 반짝였으니까. 근데 매번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제 어떻게 화낼지 몰랐어서. 잘됐다. 눈물이라도 흐를까 싶었는데, 그러지도 않은 것 보면 정말 여기까지인가 보다.
은영 씨는 알고 보니 나보다 7살이나 연상이었고, 너무 자연스럽게 난 누나에게 빠졌다. 누나는 마음이 여렸지만, 항상 날 배려해 줬고, 항상 날 올려주었다. 그냥 열심히 살아야겠다고만 날 채근했었는데, 이젠 목적이 생겼다. 누나와 행복하게 사는 거.
군대 다녀오기 전, 난 뭐든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했고 준비하면서 아빠에게 말했는데, 아빠는 열심히 해보라곤 하셨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환학생으로 최종 발표가 났는데,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교환학생 때 드는 돈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빠가 어떻게든 널 도와주고 싶었는데, 부족한 아빠라서 미안해 동철아."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차라리 미리 말해주지 라며 화를 냈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아빠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고, 내 꿈을 꺾고 싶지 않았다는 것.
군대를 제대한 후 그 강박을 떨칠 수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아빠가 미안해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다가 누나를 만났다. 날 한없이 높게 만들어주는 사람.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고, 복학하기 전까지는 정말 세상 행복했다. 점점 밝아지는 누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즐거웠다. 하지만 그러다 복학을 하고 난 후 마치 휴가가 끝난 듯 내 일상은 변했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동생 학비를 벌어야 했다. 하루가 부족했다. 주말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과외를 했고, 주중엔 도서관에서 살다가 야간 알바를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나마 야간 알바가 한가할 때에 누나랑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삶의 낙이었고, 가끔 서프라이즈로 누나가 편의점으로 오면 그렇게 기뻤다.
오늘도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나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도서관 앞이라고 했다. 난 반가움에 나갔는데, 누나는 한 껏 고민에 찬 얼굴이었고, 결혼 얘기를 꺼내더니 갑자기 그만 만나자고 통보했다.
물론, 누나의 부담을 몰랐던 건 아니다. 누나는 서른을 넘어 서른 하나가 되었고, 난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되었으니까. 아니,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 결혼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 짐이 되어 결혼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별이라니..
난 그래도 누나가 내가 간절히 말하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누난 항상 그랬으니까. 언제든 포근하게 날 안아줬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누나는 2주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래 2주면 다시 시작할 것 같았다. 나처럼 누나도 내가 없으면 안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2주를 기다린 후 기대를 품고 전화해 보니 없는 전화번호란 메시지가 들려왔다. 급하게 누나네 집으로 가봤지만, 누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항상 공부 핑계로 만나던 곳인데, 가끔은 어머니 몰래 사랑을 말하던 곳인데, 그곳의 불은 늦은 밤이 되었지만 켜지지 않았다. 내 욕심에 누나 어머니께 사실 만나고 있었다. 어딨는지 아시냐며 물을 순 없었다. 손주처럼 예뻐해 주시던 어머니께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누나는 떠났다. 그리고 난 별 수 없이 내 갈길을 달렸다. 물론 그 길이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밤마다 다리가 저리다는 아빠는 3학년 가을, 내가 조기 졸업을 위해 꼭 A를 받아야 하는 그 시험 바로 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 다리가 저렸던 건 관상동맥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서 생겼던 전초증상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한 번이라도 병원 모시고 가볼 걸. 지나가는 말에 병원 한번 가보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병원 가면 돈 많이 든다며 한사코 사양하셨다. 내가 돈을 많이 버는 입장도 아니라 약간은 모른 척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내가 성공한 걸 못 보고 떠나셨다.
장례가 끝나고, 바로 기말고사를 보고, 난 다행히 A를 받았고, 조기졸업을 했고, 운 좋게 교수님 추천서로 내가 원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미국에서 일하는 조건이었다. 나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꼭 한국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쉽긴 했다. 이 모습을 아빠가, 그리고 누나가 봤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미국에 도착해서 일한 지 6개월 즈음해서 회사 선배가 출장으로 오스틴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선배는 거래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위해 열심히 떠들었고, 난 필요한 자료를 중간중간 꺼내서 보여주었다. 다들 웃으며 사는 얘기하는 자리에 일이라니. 그리 즐겁진 않아 지루하게 서 있는데, 왠지 익숙한 옆모습이 보였다.
유모차 안에 아이를 보며 방긋 웃고 있는 사람. 동그란 얼굴에 쌍꺼풀 없는 눈이 예뻤던 사람. 누나였다.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누나의 남편인 듯 한 사람이 나타났고, 난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누나가 내 과외 선생님이라고 했다. 세일즈 신입사원에 걸맞은 순발력이었다.
누나는 여전히 예뻤다. 젊음의 예쁨이라기보다 원숙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안될 걸 알지만 '또 보면 좋겠다.'란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이런 우연은 더 찾아오지 않았다.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고 있었다고 믿었지만, 우린 같이 달릴 순 없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젠 바보 같은 메시지도 못 보내게 되었으니 진짜 끝인 건가? 이제 나도 처음 누나를 만났을 때처럼 서른이 다 되어 간다. 내 20대를 따뜻한 봄으로 만들어줬던 누나가 왠지 그립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안다. 다시 꺼내보지 못할 사진이지만, 그때 따뜻함은 계속 생각나겠지.
잘 가, 내 스물세 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