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 시절 때 해리포터의 인기는 엄청났다. 난 퀴디치가 뭔지도 몰랐는데 해리포터 덕후들은 나보고 머글이라며 해리포터 세계를 모른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 인기에 더불어 해리포터 영어 원서를 읽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된다"라고 믿으며, 두꺼운 영어 책을 들고 도전했다.
하지만 영어 책 읽기가 항상 도움이 되기만 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좋다고 하기엔 나 포함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분명 영어책을 읽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을 테니까.
영어 원서, 특히 문학 작품은 단순히 단어를 읽는 것만으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영미권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 "He must have come straight from the Hog's Head."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J.K. Rowling, 1999)
'Hog's Head'는 단순히 '돼지머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영국 전통문화에 등장하는 술집(pub) 이름을 패러디한 것이며, 영국에서는 '허름하고 수상쩍은 술집'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단순한 장소 설명을 넘어, 등장인물이 다소 수상한 곳에서 나왔음을 암시한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단어만 해석하고 진짜 의미를 놓치기 쉽다.
또 다른 예시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도 들어볼 수 있다.
개츠비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They're a rotten crowd... You're worth the whole damn bunch put together."
(『The Great Gatsby』, F. Scott Fitzgerald, 1925)
대략 단어의 뜻으로 "그들은 형편없는 무리야... 넌 그 빌어먹을 무리 전체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가치 있어."라고 볼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칭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장은'rotten'이라는 경멸적인 단어를 쓰고 'damn bunch' 같은 비속어 섞인 표현을 썼기 때문에 이 시대(1920년대) 미국 상류층 사회에 대한 피츠제럴드의 비판적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뉘앙스를 모르면, 단순히 "아 칭찬하는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작품이 가진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다. 『위대한 개츠비』는 시대적 배경(재즈 시대), 계층적 긴장감, 꿈과 환멸을 알지 않으면 표면만 스치는 독서가 되기 쉽다.
문학 작품이 아니더라도, 문화적 맥락을 모르고 읽으면 의미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영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문장 하나하나를 다 구글링 해본다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언제 그 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영어 책을 읽는 이유가 영어 공부와 재미를 둘 다 잡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럴 경우 그냥 그런 지루한 교과서 내 지문 해석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영어 책을 읽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 원서를 통해 다양한 어휘와 문장 구조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긴 글을 읽는 체력도 기를 수 있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어로 읽으면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를 한글 번역본으로 읽은 후 영어 원서로 다시 읽는다면, 앞서 읽은 배경지식 덕분에 어려운 문화적 요소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이처럼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은 영어 원서 독서에서 큰 장점이 된다.
오히려 이럴 때 한글 번역본에서 의역으로 놓친 부분을 찾을 수도 있다. 아, 이래서 얘가 이런 말을 했구나 하는 언어유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모르는 상황에서 읽을 땐 정말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무슨 말이지? 분명 아는 단어인데, 난 왜 하나도 모르겠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처음 영어로 된 책을 읽을 때는, 문학 작품보다는 역사나 에세이처럼 배경 지식이 덜 필요한 장르를 추천하고 싶다. 역사적인 문서나 연설문은 사건과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문화적 오해의 위험이 적다.
예를 들어,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Abraham Lincoln, Gettysburg Address, 1863)
여기서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는 '87년 전'을 뜻하는 표현이다.
**영어 고어에서 score는 20을 뜻한다. 그래서 four score는 4x20 = 80이고 and 7 yrs ago이니 87년 전이다.**
조금은 고풍스러운 표현이지만, 기본적인 배경만 알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유를 기반으로 세워진 새로운 나라'라는 개념도 직접적이고 명료하다. 이처럼 역사 문서나 연설문은 복잡한 문학적 장치 없이, 곧바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초보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는 교과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흥미 있는 역사를 찾아보면 영어도 배우고 호기심도 채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쟁사를 읽는 걸 좋아하는데, 전쟁은 결국 승자와 패자가 나오기 때문에 구조가 간단하고 읽다 보면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어 재미도 있다.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미국 교과서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구글링을 통해 미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2차 세계대전 관련 문장을 발췌해 보았다.
(출처: 『The Americans: Reconstruction to the 21st Century』, McDougal Littell)
"On December 7, 1941, Japan launched a surprise attack on the U.S. naval base at Pearl Harbor in Hawaii. The next day, President Roosevelt asked Congress to declare war on Japan."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다음 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에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청했다."
아주 명료하다. 사건들을 재구성해보면서 영어 표현을 익혀보자.
결국 영어 책 읽기는 무조건적인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고, 필요한 만큼 배경지식을 보완하면서 읽어야 한다. 특히 처음부터 난해한 문학 작품에 도전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역사서나 에세이로 시작해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교과서를 읽어보거나 영어 위키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영어 원서 읽기는 '속도'가 아니라 '이해'를 목표로 해야 한다. 천천히 읽고, 모르는 부분은 나중에 메모 후 찾아보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나만의 탐구를 즐겨보자. 이미 모든 추리가 풀린 번역본보다 분명 읽기 힘들긴 하겠지만, 원서에는 숨겨진 보물들이 정말 많다. 본인도 모르게, '아, 이게 이래서 이렇게 됐구나.' 하며 탄성을 지를 일이 분명 생길 것이다. 원서를 꼭꼭 씹어서 내용을 온전히 소화하는 과정을 즐겨보자.
처음 영어로 된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이 명확하고,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GPT로 검색한 영어 독서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책들이다.
『Charlotte's Web』 by E.B. White
부드러운 문장과 따뜻한 이야기로 유명한 어린이 소설. 어휘와 문장구조가 비교적 쉬워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Who Was Abraham Lincoln?』 by Janet B. Pascal
미국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초등 고학년용 전기 시리즈.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정보 전달 방식이 특징이다.
『Tuesdays with Morrie』 by Mitch Albom
에세이 형식으로, 문장이 짧고 명료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다루지만 내용이 무겁지 않고, 쉽게 읽힌다.
이 책들은 어휘 난도가 높지 않고, 문화적 배경 지식 없이도 감정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 입문용으로 적합하다.
효과적으로 영어 원서를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을 기억해 두면 좋다.
1. 모르는 단어를 모두 찾지 말자
한 문장마다 사전을 찾다 보면 흐름이 끊긴다. 문맥을 통해 유추하고, 정말 필요한 단어만 골라서 확인하자.
2. 줄거리 파악을 목표로 삼자
처음부터 모든 세부 사항을 완벽히 이해하려고 하면 지친다. 큰 줄기만 이해하면서 읽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
3. 한 번 읽고 끝내지 말자
처음엔 대강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문장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자. 반복을 통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다.
이런 팁들을 염두에 두면, 영어 원서 읽기가 덜 부담스럽고 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