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1
대한민국 남쪽에 사는 탓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것부터 긴 여정이었다. 자정쯤 집을 나서고 23시간이 지난 후에야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묘하게 두근거린 이유는 이국적인 사람들의 생김새가 낯설어서였을까, 오랜만에 여행하는 탓이었을까.
주변이 익숙해질 때쯤 기어코 첫날부터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캐리어가 부서졌다. 환전도 해야 하고 유심도 사야 하고, 공항 바로 앞의 호텔을 예약하긴 했지만 해가 다 진 시간에 호텔까지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캐리어가 부러진 건 우리가 해치워야 할 일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라 여기며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고장 난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호텔까지 걸어갔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두 번째 일이 생겼다. 오버부킹이 되어버린 바람에 다른 호텔로 옮겨야 했다. 차로 1~2분 거리의 호텔이고 원래 예약했던 객실과 비슷한 조건에다 내일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계획과 다른 전개라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실이 취소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친절한 네팔 사람들에게 웃어 보이기로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와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창 밖에서 여과 없이 들려온다. 어째 저째 첫날밤이 지나갔다.
역시 익숙한 곳이 아니면 깊게 잠들긴 어렵다. 평소에는 일어나지도 못할 시간에 눈이 떠졌다. 포카라행 비행기는 열한 시쯤이었는데 조식을 먹고 나서도 두세 시간이 남아있어서 동네 구경 할 겸 호텔 밖으로 나갔다.
“어머나! 나 때 있던 버스 안내원도 있네.”
“장난감 없이 그냥 땅바닥에 앉아 노는 것까지… ‘아 옛날이여’다 정말!"
꼰대들의 고유명사인 ‘라떼는 말이야~’는 꼭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네 부모님들, 요즘은 나까지도 자주 내뱉는다. 특히 여행길에서 더 자주 들을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들고 있음의 산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이전의 경험을 비추어보는 순간이 존재하는데 첫 타국의 땅을 밟아 본 엄마에겐 눈앞의 모든 것이 비교 대상이었을 것이다. 낯설지만 신기한 눈으로 오빠 옆에 딱 붙어 구경하시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켜켜이 쌓이면 나이가 되는 걸까. 한 해를 거듭할수록 들춰 보는 지난날들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채우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는 요즘이다. 고민의 끝에서 만들어지는 나의 라떼는 어떤 맛일까.
걷는 길에 잠시 만난 현지인이 조금만 걸어가면 유명한 사원이 하나 있다고 추천해 준 김에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파슈파티나드 힌두교 사원’이었는데 내가 구글맵 저장 목록에 저장해 둔 사원이었다. (외국인에겐 1000루피씩 입장료를 받는다.)
아마도 엄마의 고난은 여기서부터 아니었을까. 화장장이 있어 악취가 은은하게 났다. 과연 위생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환경, 그런 곳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과 구걸하는 사람, 이름 모를 종교인에게 기도를 받는 사람, 돈을 받고 축복해 주는 여인네들 까지. 그들의 문화라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없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티를 내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여행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존중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역함을 억눌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괜히 숨을 참는다. 엄마는 속이 이상했는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게워냈고, 나도 크게 들숨과 날숨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절망 편, 어쩌면 속성 편으로 네팔의 일상을 마주하고 포카라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연착이 일상이라는 여행자들의 후기는 우리에게도 현실이었다. 포카라는 산간 지역이라 안정적이지 않은 기후 때문에 연착이 더 잦아보였다. 탑승 수속을 밟으면서 연착이 되는 또 다른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일단 사람들이 손수레를 끌어서 직접 수화물을 옮기고 있었다. 체크인도 간이로 설치한 것 같은 부스에서 진행됐고 그 부스 바로 뒤에서 사람들이 손수레로 직접 수화물을 나른다. 어제 깨진 캐리어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대기의 연속이다. 이 공항이 운영되는 시스템의 문제인 건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공항 안에서도 대기, 활주로로 가는 버스에서 대기, 비행기를 탑승하고도 기내 안에서도 대기. 원래 시간보다 약 2 시간이 지난 후 이륙했다. 나중에 윈드폴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이른 시간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의 연착된 시간과 비교하면 우리는 양반이었다.
여기서 신기한 건 네팔 사람들은 실증내거나 조바심 내지 않고 그저 기다리는 게 익숙해 보였다. 로마를 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말처럼 네팔의 법을 따라야 했다. 바꿀 수 없다면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또 받아들이며 포카라로 떠났다.
이렇게 얼렁뚱땅, 어째 저째 돌아가긴 하는 네팔 일상들이다. 이곳에선 캐리어가 부서지는 일, 비행기가 연착되는 일처럼 작은 문제에 연연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천천히, 하지만 언젠가는 나아가는 과정들에 ‘싫증’이라는 감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똑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그들의 생활 중 하나의 일부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되려나. 난 그랬다. 불편하고 때로는 이해조차 되지 않는 이 나라지만 어째 저째 즐겨보기로 또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