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의 거짓말 – 부모, 자녀, 형제 사이의 감정

by 김작가a

가족은 인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이며, 가장 깊은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만큼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감정의 왜곡이나 단절이 일어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거짓말’은 단순한 사실의 은폐나 왜곡을 넘어선다. 그것은 감정을 숨기고, 진심을 감추며, 때로는 침묵으로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거짓말은 가족 구성원 간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감정의 흐름을 막아 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특히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왜곡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며,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내면에는 상처와 오해가 깊게 자리 잡는다.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곤 한다. “엄마는 괜찮아”, “아빠는 힘들지 않아”라는 말은 자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진심을 알 수 없게 만든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배우지 못한다. 결국 자녀도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몰라요”, “그냥 싫어요” 같은 말로 감정을 회피하게 된다. 이처럼 감정이 억눌린 채로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거나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감정의 왜곡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부모의 무의식적인 비교는 형제 간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질투와 소외감을 낳는다. 첫째는 책임감에 짓눌리고, 둘째는 중재자의 역할에 지치며, 막내는 자유로움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겉으로는 “괜찮아”, “신경 안 써”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유교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가족 구조를 형성해왔다. 부모는 권위의 상징이었고, 자녀는 순종해야 하는 존재였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시되었고, 개인의 감정보다는 가족의 체면이 중요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은 가족 내에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부모는 자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속마음을 숨긴다. 감정은 억제되고, 거짓된 평화가 유지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가족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 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역할은 감정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가족 체계 이론에서는 ‘식물형 가족’과 ‘폭풍형 가족’으로 나뉘는데, 식물형 가족은 감정을 억제하고 조용히 갈등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폭풍형 가족은 감정을 격렬하게 표출하지만, 그 감정이 조율되지 않아 상처를 남긴다. 두 유형 모두 감정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애착 이론에서도 가족 내 감정 조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다. 반면 회피형이나 불안형 애착을 가진 아이는 감정을 숨기거나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 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가족 내에서 감정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세대 간 감정 인식의 차이도 감정 조율을 어렵게 만든다. 부모 세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함의 표시라고 배웠고, 자녀 세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소통이라고 믿는다. 부모는 자녀의 감정 표현을 ‘버릇없음’으로 해석하고, 자녀는 부모의 침묵을 ‘무관심’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감정 언어를 사용하는 가족 구성원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결국 감정은 전달되지 않고, 오해만 깊어진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감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가족 상담을 통해 감정 표현 훈련을 받을 수 있다.

감정 조율은 단순히 갈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의 연결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감정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거짓말로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진심을 나누는 용기를 내는 것이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감정 조율을 위한 실천 전략으로는 감정 언어화 훈련, 감정 일기 쓰기, 가족 회의, 역할 재정의, 상담 참여 등이 있다. 감정을 ‘화났다’, ‘서운하다’, ‘불안하다’ 등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은 갈등을 예방하고, 오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집에서는 화가 나도 말할 수 있어”라는 새로운 규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족 회의나 감정 일기 쓰기 같은 실천적 방법도 효과적이다. 정기적으로 가족이 모여 각자의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감정의 흐름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각자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자녀는 부모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형제자매 간에는 비교와 경쟁이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나누고자 하는 의지다. 감정 조율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거짓말로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진실한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할 때 가족은 비로소 회복될 수 있다. 감정은 숨길수록 멀어지고, 나눌수록 가까워진다. 가족 안의 거짓말을 걷어내고, 진심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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