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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국내 대표 배리어프리 예술 축제 '페스티벌 나다' 총감독 독고정은 인터뷰

by 아뜨달

2012년, 수많은 ‘나’ 그러니까 모두를 위해 둥지 하나를 튼 사람이 있다. 독고정은에게는 작은 둥지였을지 모르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의 전초기지였던 그곳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의 가능성이 움트기 시작했다. 네스트 나다라는 공연장을 넘어, 어느덧 14회를 맞은 나다 페스티벌까지. 국내 1호 배리어프리 문화예술기획자는 분명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네스트(둥지)를 위한 그의 넥스트(다음)는 무엇일까.


인류의 다음은 언제나 우주였다. 하지만 달은 여전히 멀고, 우리는 늘 서로의 곁에 있었다. 독고정은은 가까이에 있는 ‘서로’에 집중해, 해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예술의 현장을 쌓아왔다. 전초기지가 우주로 향하는 발판이 되듯, 그의 둥지는 현재 모두를 위한 발판이 되어가고 있다. 우주로 가는 기술만큼이나 서로에게 다가서는 기술이 필요한 지금, 진짜 함께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 독고정은과 이야기 나누었다.




달 아래에서 살아가는 방법


1. 안녕하세요, 정은 님. 자기소개와 더불어 지금의 대표님을 있게 한 '네스트 나다'와 대표 프로그램 '페스티벌 나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내 1호 배리어프리 문화예술기획자 독고정은입니다. 예술단체 ‘세가지질문’과 여성기업 ㈜에이이치비기획의 대표로서, ‘접근 가능한 예술’을 넘어 ‘함께하는 예술’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스트 나다’는 다양한 감각과 존재들이 머물고 날아갈 수 있는 둥지 같은 공간이었고, 그 철학은 여전히 ‘페스티벌 나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페스티벌 나다는 모든 감각을 존중하는 예술축제로, 기술과 예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행사전 참여자 장애인식교육 및 장애관객대응 안전교육.jpg


2. 소중한 나(I)가 모이면 다(ALL)가 된다는 대표님의 철학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다’라는 이름에 대표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요. 나다 페스티벌의 결정적인 계기는 농인(청각장애) 예술가를 만난 일이었다고 들었지만, 정은 님 안에서 그 마음이 시작된 순간은 언제였다고 보시나요?

‘나다’는 “소중한 나(I)들이 모여 더 소중한 다(ALL)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저의 삶의 궤적 속에서 서서히 태어난 말입니다. 나다의 결정적인 계기는 농인 예술가를 만난 일이었지만, 그 이전 약 16년간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면서 인종, 국적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 함께 부딪치며 놀 때 경계가 허물어지고 편견이 사라지는 다양한 순간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귀국 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적용해 보고자 했습니다. 장애라는 ‘경계’가 아닌 ‘다른 감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얻게 된 순간, ‘나다’는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3. 둥지라는 말에는 머물 수 있는 공간,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 다시 날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정은 님께 둥지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네스트 나다 혹은 페스티벌 나다를 통해 그런 둥지를 만들 수 있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저에게 둥지는 단순히 쉬는 공간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토대이자 다시 날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둥지라는 의미의 복합문화예술공간 ‘네스트 나다’는 다양한 장애, 비장애 예술가들이 성장 발전하는 기반이 되어왔고, 페스티벌 나다가 소규모로 연중 이루어지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장애 비장애 예술가의 콜라보 공연, 농인 관객과 비장애 관객의 수어 떼창, 그리고 장애 관객과 비장애 관객이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어울려 즐기는 순간이 제게 계속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수어통역 (1).JPG 페스티벌 나다의 공연 사진. 오른쪽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함께 있다.


4. 네스트 나다가 문을 닫은 뒤, 많은 홍대 인디밴드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졌지만, 나다는 여전히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네스트 나다가 수행해 온 공간의 역할은 현재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고 계신가요?

네스트 나다는 본래 페스티벌 나다가 소규모로 계속 열릴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고, 다양한 배리어프리 프로그램의 개발이 이루어졌었습니다. 비록 물리적 공간은 사라졌지만, 나다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현재는 온라인 플랫폼, 지역 협업 네트워크, 그리고 축제 프로그램 안에서 공간의 역할을 분산하여 수행하고 있습니다.



5. 음악은 본질적으로 청각 중심의 예술인 만큼, 농난청인 혹은 비전형적 감각을 가진 이들을 위해 기존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기획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라는 매체로 배리어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정은 님께서 던진 첫 질문 혹은 첫걸음은 무엇이었나요?

첫 질문은 “과연 이 소리를 누가 어떻게 듣고 있는가”였습니다. 나아가 ‘듣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을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우퍼조끼, 진동기, 공기압 조끼 같은 기술 장치를 활용한 감각 재구성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6. 페스티벌 나다에서 뮤지션과 시각예술 작가의 협업은 음악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는 독특한 방식처럼 보입니다. 공연 하나하나가 확장된 감각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뮤지션과 비주얼 아티스트 간의 협업은 ‘공존’을 원칙으로 합니다. 음악이 먼저일 수도, 시각이 먼저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감각을 교차시켜 새로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때 기획자는 중재자라기보단 서로의 감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감각의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죠.



7. 서로의 감각을 교차시켜 감각의 통로를 열어준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존의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페스티벌 나다의 장애인식 공감 프로젝트(시민참여 부스) 중 ‘나다공작소’가 있습니다. 약시, 망막색소변성증·황반변성증에서 나타나는 터널 증후군, 망막 혼탁증, 색각이상(색맹) 등 다양한 저시력 장애 유형을 체험할 수 있는 안경을 착용하고, 그 상태로 소품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한 번은 한 어머니가 조용히 구석에서 소품을 만든 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 딸이 15살인데 약시예요. 오늘 처음으로, 제 딸이 보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나다공작소-저시력장애 공감부스.JPG 나다공작소의 저시력 장애 공감부스



8. 배리어프리 공연이라고 하면 보통 수어 통역이나 자막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페스티벌 나다에서는 우퍼조끼, 스마트글래스, 공기압 조끼, AI 로봇 같은 기술 기반의 감각 장치들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시는 게 인상 깊었어요.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서, 기술이 감각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런 방식의 배리어프리를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기획자로서 어떤 감각을 실험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배리어프리는 단순한 ‘접근성’이 아니라 ‘감각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술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우퍼조끼나 스마트글래스는 단지 편의를 넘어서, 청각 중심의 공연 문법 자체를 재구성하게 합니다. 특정 집단을 위한 보조가 아니라 공연의 감각적 지평을 넓혀 모두가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9. 그렇게 다양한 장치를 하나씩 도입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장치부터 시도하셨고,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청각장애 관객에게 촉각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진동 쿠션’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일부 청각장애 관객이 무대 앞쪽에서 쿠션을 안고 관람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셨고, 이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체감이 가능하도록 현재는 ‘우퍼 조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햅틱 팔찌’도 시도했지만, 촉각 정보는 척추 라인을 따라 전달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또, 모든 청각 정보를 촉각으로 변환하면 오히려 정보가 희석되기 때문에, 현재는 중저음역대만 전달하도록 EQ 레벨을 조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퍼조끼.jpg
공기주입식조끼.jpg
우퍼 조끼(좌)와 공기 주입식 조끼(우)


10. 실제로 페스티벌에서 장치들을 적용하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관객의 반응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장치 도입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감각이 예민한 관객이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안심 목걸이’를 사용합니다. 2019년 춘천 행사 때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공을 준비했는데, 일부 관객이 공연 중 무대 위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뮤지션이 그 공을 다시 관객에게 던져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공연장이 ‘캐치볼’ 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후에는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안심 목걸이로 전환했고, 공기 주입식 조끼를 도입해 포근히 안기는 듯한 심리적 안정감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동이 잦던 관객이 이 장비를 착용한 뒤 공연 끝까지 자리를 지킨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페스티벌 나다의 시그니처인 암전 공연 때는 청각장애인이 청각과 시각이 모두 제한되는 상황이 되므로, 사전에 가사집을 별도로 제작하고 상황에 따라 촉수어를 제공합니다. 최근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좌석 배치, 촉수어사, 텔레코일존 설치뿐 아니라, 점자를 처음 배우는 시청각장애인도 읽기 쉬운 ‘단면 큰 글씨 점자 가사집’을 준비했습니다. 3시간이 넘는 긴 공연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든 시청각장애인 관객이 앵콜까지 춤추며 즐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기회의 제공’이야말로 배리어프리 문화예술이 가진 가장 큰 의미입니다.


안심목걸이와 큰글씨 안내서.jpg 페스티벌 나다의 큰 글씨 안내서와 안심 목걸이


11. 10년 넘게 네스트 나다 공연장을 운영하고,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셨을 것 같아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축제인 만큼, 모두가 즐기는 예술을 위해서 가장 경계하거나 신경 쓰고 있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으신가요?

‘동등한 조건’이 아니라 ‘동등한 경험’을 지향합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며, 누구도 특별 대우받지 않는 구조.

그 균형을 위해, 관객의 다양한 경험을 설계 초기부터 상상하고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 비장애 관객의 주도적인 결정권을 존중하는 공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12. 일방향 공연보다 양방향 공연의 수가 늘어가는 요즘, 관객의 주도적인 결정권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관객의 주도적인 결정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페스티벌 나다의 오디오 리플렛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듣고 싶은 항목만 선택해 들을 수 있으며, 재생 속도도 조절 가능합니다. 중간에 바로 다음 항목으로 넘어갈 수도 있죠. 저시력 관객은 큰 글씨 자료를 보면서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QR 마크는 도톰한 테두리로 제작되어 전맹 관객도 손끝으로 테두리를 확인해 스스로 스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연팀에는 리허설, 무대 세팅, 주차 안내 등 다양한 이미지를 포함한 사전 안내서를 배포합니다. 시각장애 예술인이 출연하는 경우, 동행자의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서를 텍스트 파일로 변환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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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나다의 오디오 리플렛(좌)와 QR 마크(우)


13. 페스티벌 나다는 서울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도 개최되어 왔습니다. 지역마다 장애 인식이나 문화 예술에 대한 접근성도 조금씩 다르다고 들었는데요. 새로운 지역에서 축제를 준비하실 때, 어떤 점을 가장 고려하시나요?

지역마다 감각의 언어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감각이 반영된 축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동시에 서울 수도권 지역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배리어프리 문화예술 환경을 조성하고, 장애 감수성을 키우는 것을 또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14. 벌써 14번째 축제까지 성료했어요. 첫 회와 지금을 비교해서 축제 외적으로, 혹은 정은 님 내적으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반대로 한결같이 가지고 계신 마음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초기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 ‘될까?’라는 질문이 컸다면, 지금은 ‘어떻게 더 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축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각의 위계를 허물고 함께하는 예술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늘 같았습니다.



15. 더 열린 축제를 만들기 위해 나다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새로운 시도나 실험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시도는 다양한 지역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보고, 듣고, 경험한 만큼 알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없이 즐기는 배리어프리 현장을 경험한다면, 인식이 바뀌고 태도가 변하며 사회도 조금씩 변할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배리어프리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저희 페스티벌 나다의 목표입니다.



같은 곳에 있어도 닿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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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흔히 감각의 부재가 불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내면의 위계ㅡ오만함이나 열등감 혹은 과한 조심스러움ㅡ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은 님의 일상 안에서 보이지 않는 위계나 일상적인 편견을 체감한 적이 있으실까요?

예술 안에서도 위계는 존재합니다. 장애 예술인은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여전히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공연장과 배리어프리 환경 축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공연장의 장애 관객에 대한 과한 염려가 ‘안 된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시도해 보자’보다 ‘현실적이지 않다’며 무시되는 경우도 많았죠. 사소한 일정 조정조차 ‘그 친구 사정 때문에 전체 일정이 어렵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위계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 장애인과 비장애인, 기획자와 아티스트,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관객 등. 여러 감각과 입장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기획자로서 직접 부딪히셨던 가장 분명한 불통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공연 중간 장애 관객이 조용히 자리를 이동하는 장면에서, 다른 관객이 "왜 저런 걸 허용하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어요. 이런 상황은 ‘공연은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관념과 ‘자유로운 감각을 허용하자’는 나다의 철학이 충돌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죠. 불통은 감각의 차이보다, 감각을 규정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18. 배려와 동정, 접근성과 동등성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은 님께서는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고 계시고, 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배려’는 위에서 아래를 향해 주는 느낌이 있지만, ‘접근성’은 평평한 길을 닦는 작업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함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지, ‘특별히 잘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획자는 그 간극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19. 정은 님께서 서울과 지방의 배리어프리 인식 격차를 언급하셨는데요. 지방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기획하거나 협업할 때, 가장 어렵거나 절실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지방 공연 기획에서 가장 어려운 건 ‘전례 없음’과 배리어프리에 대한 ‘낮은 이해도’였습니다. 배리어프리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면 그것을 '장애 관객만을 위한 행사'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와 비장애 모두에게 열린 문화예술의 기회 제공이라는 점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함께 경험해 나가며, 작은 변화라도 현실에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역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계속 같은 달 아래 살아가야 하니까

ai 로봇 나다랑 시연중인 독고대표.jpg


20. 페스티벌 나다에서 배리어프리는 배려가 아닌 당연한 장치, 그리고 핵심적인 공연의 요소로 작동합니다. 지난 14년 동안 많은 피드백을 받으셨을 텐데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당사자 관객 혹은 관계자의 피드백이 있나요?

페스티벌 나다 초반에 오신 지체 장애 관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공연장 안에서 내가 ‘염려나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즐길 사람’으로 여겨진 건 처음이었다”고요.

축제가 끝나고 귀가하는 농인 관객이 내년에도 꼭 해주세요!라며 미소를 건넬 때, 암전 공연을 경험한 관객들의 관람 후기들, 축제 참여자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배리어프리 문화예술 행사를 만들어 갈 때, 제가 왜 이 축제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시각장애인의 삶을 잠시 함께 살아보는 암전공연.jpg 페스티벌 나다의 암전 공연 장면


21. 페스티벌 나다는 물리적 장벽을 넘어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심리적 장벽을 없앤다는 건, 먼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설계일 텐데요. 기획자로서 관객의 문을 열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시는 감각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내가 아닌 너의 방식으로 감각하겠다’는 마음. 이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획자는 관객의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공연 설계 시, 어떤 감각으로도 경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건 관객을 초대하는 방식이자, 믿는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니까요.



22. 관객들이 우퍼쿠션을 끌어안고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모습은 함께 하는 축제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 장치들이 여전히 특정한 배리어프리 프로그램에만 제한적으로 쓰이곤 하잖아요. 만약 주류 아티스트들이 이런 장치를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무대 위에서 이런 장치를 도입한 나다를 언급해 준다면, 더 많은 당사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기술의 상용화, 장비의 대중화, 문화적 확산이 장애인의 감각을 사회 속으로 더 가까이 불러올 수 있다고 보시는지 정은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장비가 특별 프로그램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퍼 조끼나 공기압 장치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감각적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주류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그 경험을 ‘나다에서 만났다’고 언급해 주는 순간, 사회 전체가 감각의 다양성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예시로 저희는 청각 정보를 보조하는 햅틱 장비를 2013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가 나올 때마다 문의하고 테스트하고, 나다에 적용해 봅니다. 2017년 모 외국회사의 게임용으로 개발된 우퍼 조끼와 관련해서, 청각장애인과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기고자 한다며, EQ 레벨 조절 등 다양한 문의를 하고, 나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해당 제품은 2022년부터 ‘콜드플레이’가 세계투어에 사용 중입니다. 올해 한국에서도 사용했구요.



23. 예술은 위계 없는 관계를 실험하고 선보일 수 있는 장르라고 선언하시는 것 같아요. 정은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공연예술과 배리어프리에 대한 정은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예술은 원래 경계 없는 장르입니다. 문제는 경계가 예술 안이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제도와 문법 안에 있다는 거죠. 페스티벌 나다는 그 문법을 조금씩 뒤틀고 재구성하는 시도였습니다. 100% 완전하진 않지만, 적어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퍼포먼스아트 (1).jpg 페스티벌 나다의 퍼포먼스 아트


24. 수많은 불통 사이에서 소통케 하는 건 정은 님이 말씀하신 공감일지도 모릅니다. 공감은 이해하려는 노력일까요, 아니면 그저 함께 감각을 나누는 일일까요? 정은 님이 축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공감의 방식’은 어떤 형태에 가까운가요?

저는 ‘함께 감각하는 일’이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 오히려 오해가 시작될 수도 있어요.

공감은 때로 침묵으로, 같은 자리에 존재해 주는 것으로 완성되기도 합니다.


촉수어로 함께 공연을 즐기는 시청각장애인.jpg 촉수어로 함께 공연을 즐기는 시청각장애인 관객


25. 많은 사람들이 네스트 나다의 철학에 공명했습니다. 나다의 철학은 앞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이어지길 바라시나요?

나다의 철학은 ‘내가 다르다는 걸 인정받는 기쁨’에서 시작됩니다. 앞으로는 저보다 더 젊고 다양한 기획자들이 이 철학을 자기 식대로 이어가길 바랍니다. 제가 만든 틀을 답습하기보다, 그 철학을 확장하고 변형시키는 식으로요.



26.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정은 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페스티벌 나다에서는 장애 관객과 비장애 관객, 농인과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이 함께 수어 떼창을 즐기는 순간이 있어요. 공연장의 조명이 바닥을 비출 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리듬을 나눌 때, 그때 저는 정말로 ‘같이 살아간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무엇이 우선인지 아는 사람은 언제나 간단하고 확실하다. 단순하지만 명확했던 그의 답변에서 우리는 이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말 대신 함께함이 가능한 현장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그 확실함에 힘입어, 우리가 마주한 장치와 기술들이 특정한 축제나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공간과 우리의 감각 속에서도 당연히 작동해야 한다는 믿음을 품게 되었다.


‘배리어프리 문화예술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그의 궤적은, 이제 우리의 다음을 상상하게 한다. 닿지 않음과 닿음을 오가는 경계 위에서 서로에게 닿기 위해 감각을 모으는 일.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확실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곁에서 시작된 변화가 다음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Interviewee 독고정은


Interview 아뜨달

Research 배정아

Edit 엄나영

Photography 독고정은 제공

Design 김윤이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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