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 속 외국인 아이들(1)
2018학년도 경기 초등 임용 시험을 치를 때가 떠오른다.
1차로 필기 시험을, 2차로 실기 시험을 보는데 2차는 3일 동안 수업 시연, 수업 나눔/개인 면접, 집단 토의/영어 수업 시연, 영어 면접 이렇게 분야가 나뉘어 있었다.(물론 현재는 조금 시험 과목이 달라진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수업 시연'이었다. 수업 시연이라는 과목은 특정한 학년, 과목, 학습 주제를 정해주면 수업을 미리 구상한 다음 면접관들 앞에서 수업의 일부를 보여주는 과목이다. 수업 시연에는 특정한 조건이 따로 주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학습 부진 학생이 2명 있다고 가정하시오'. 혹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을 진행하시오.'
그동안 대체로 예상한 조건들이 번갈아가며 나왔는데, 그날 시험은 달랐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같은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의 황당함이 공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시험을 본 지 시간이 꽤 지나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습 부진 학생과 다문화 학생이 모두 합쳐 7명쯤 있다고 가정하고 수업일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교육대학교에서는 학습 부진 학생이 대략 1-2명 있다고 배웠고, 교생 실습 때도 그렇게 경험했는데 이렇게 많은 숫자를 제시한 문제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억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조건에 제시된 숫자의 학생을 최소 한 번 이상 언급하는 발문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문제였다.
결국 시험은 합격해 본가와 먼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2년이 지난 뒤 다시 본가 근처의 학교로 지원해 새로 발령이 났다. 그 학교는 나의 모교였기에 의미가 있는 발령이었다. 그 해에 6학년을 맡았는데, 학교의 위치가 구도심으로 바뀌면서 외국인 학생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그 지역의 중심지였지만 구도심으로 전환되며 집값이 하락하였고, 비교적 싼 주거비용 덕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리게 되었다. 주로 러시아어를 쓰는 문화권의 국적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한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이 모두 외국인인 경우이다.) 당시 우리 반에는 스물 네 명 중 세 명의 외국인 학생이 있었다. 남학생 한 명은 다른 한국인 학생들보다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학습 성취도를 보였고, 나머지 두 여학생은 학습적인 부분에는 어려웠지만 의사소통이나 학교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날 2학기에 우리반에 한 외국인 남학생이 전학을 왔다. 본국에서 한국에 처음 입국한 것이라 한국어로는 인사밖에 할 줄 모르는 학생이었다. 한국인 학생들도 5,6학년이 되면 배우는 과목의 수도 많아지고 내용의 깊이도 깊어져 어려워하는 시기였는데, 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니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한국어 교실'이 있어서 그 학생은 하루에 두 시간 기초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 두 시간은 6학년 수준의 학습을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모든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그 아이의 눈빛이 점차 탁해지기 시작했다. 사회 시간에 배우는 삼권분립이라든가, 분수의 곱셈 이런 것들을 한국어로 배워도 어려운데, 그 아이가 이 내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겠느냔 말이다. 결국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엎드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고민을 해봐도 그 아이에게는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반 외국인 학생들만이 그저 한 줄기 빛일 뿐이었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부모님의 카페에 어느날 부모님의 지인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 남성분이었는데 러시아 분과 결혼을 해서 혼혈인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었다. 마침 나의 교실 상황을 부모님께 전해듣고는 함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습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먼저 밝게 건네는 인사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인사 한 마디라고?' 러시아어로 번역된 자료도 나눠주고, 한국어와 러시아어 모두 능숙한 학생에게 통역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인사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는 하루의 시작, 선생님의 따뜻한 인사 한 마디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교실 속 모든 말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말이라 수업 내용을 듣고 앉아있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아이에게 따뜻한 인사 한 마디를 건네기로 했다. 물론 인사 한 마디로 그 아이의 한국어 실력은 향상되지 않았지만 인사가 나름의 위로로 받아들여졌길 바래본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그 아이. 잘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