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포(four)가 무서운 이유
사모님 네 분..
캐디들 사이에서 일명 사포(4명의 사모님을 줄임말)라 불리는 라운드 조합은 나를 포함, 두려워하는 캐디들이 많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단순하게
나를(캐디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소들이 한 번에 모여 있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꽤나 큰) 확률적으로 남자골퍼 4명보다 여자골퍼 4명과 함께 라운딩을 할 때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훨씬 힘들어진다는 걸 전국의 많은 캐디들이 다들 몸소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도 여자이지만 여자골퍼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들은 수 없이 다양하기에 줄이고 줄여서 말해야 할 것 같다.
나와 동료들이 겪은 봐를 들어보자면,
운동하러 나와서 운동은 뒷전.
수다 삼매경에 돌입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죄송하게도) 항상 진행에 목마른 캐디로서는
"빨리빨리 치세요!"
라고 시원하게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말은 한숨과 함께 최대한 목구멍 뒤로 삼킨 채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며 "회원님 치셔야 돼요"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팀의 그림자도 못 보고, 무전기엔 내 이름이 널리 널리 울려 퍼지게 된다.
여자들의 신경전에 나까지 동참해야 하는 이유 또한 우리의 신경까지 곤두서게 만든다.
여성들은 분위기와 흐름을 금방 읽어내고 눈치가 빠른 편이다.
나 역시 9년의 운동선수 생활동안 눈칫밥을 먹고살았기에 분위기의 흐름을 잘 읽는 편.
매번 캐디 일을 하며 오늘의 일당을 주시는 분들께 미운털이 박히고 싶지 않아 그분들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춘다.
그리고 나는 꽤나 오랜 캐디 생활로 저런 것이 서비스직의 숙명이라 여기기에 잘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만의 신경전이 발생하는 팀들을 만나면 곳곳에서 울리는 내 눈치 레이더 때문에 두통이 생길 정도다.
그녀들이 볼 때 내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고 누군가만 편애한다 느껴지면 사실이든 아니든 꼬장을 부리기도 하기에, 최대한 공평하게 어드바이스를 하는 내 눈치코치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동료 캐디가 겪은 일이었다.
여자 회원님 3분이 내장하셨다.
회원제가 특별한 이유는 회원이라는 그 직함을 받았을 때 골프장에서 조금이라도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서다.
캐디에게도 특별대우를 받고 싶은 건 모두 마찬가지!
하지만 옛말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조용하게 혼자 플레이를 하시는 분들보다 더 많이 질문하고 물어보고 캐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리들은 말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고 움직여야 하고 의도치 않게 좀 더 옆에 붙어 있게 된다.
캐디는 내 일만으로도 바빠서 꼭 누군가에게 붙어 있고 싶은 캐디는 아무도 없으리라.
(좋아서 어드바이스를 더 해드린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 주셔라.)
더 필요로 하시는 분들에게 더 알려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날은 유독 한분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던 날.
질문 많고 손이 많이 가는 분이 계셔서 그 옆에서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던 날.
그 동료 언니에게 그런 날이었다.
몇 홀이 지나자 다른 회원이 눈을 흘기며 대놓고 말했단다.
"캐디언니! 사람 차별하는 거야?
왜 저 회원만 더 신경 써줘! 캐디피는 똑같이 내는데"
캐디피는 똑같이 N/1 하시는 거야 알겠지만 우리의 사정도 알아주셔야 하지 않을까.
물어보는데 팽개치고 갈 수는 없는 일이잖은 가.
어드바이스와 도움을 주는 게 우리 일인 것을... 여쭤보면 대답해야 하는 게 당연한 나의 일이다.
우리는 모르는,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모를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 문제를 하루 잠시 만나는 캐디까지 끼어 경쟁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에 마음 졸이는 건 꽤나 흔한 일이기에 나는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 앞에서 다른 동반자의 흉을 보는 일이 있어도 함께 맞장구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여자 골퍼들은 어떤 말로 상처받고 컴플레인을 걸지 모를 일이기에.
4인이 플레이 중 한 명이 걸어가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조차도 잠시 짬을 내어 흉보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나에게 대놓고 흉보지 않으면 다행인 일.
대놓고 흉보면 난감한 일.
'저럴 거면 함께 어울리지 않아도 될 텐데..'
싶다가도 골프는 4명을 모으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 또한 국내 골프장의 문제. 퍼블릭들은 무조건 4인 내장인 곳이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사포를 나가면 가장 힘든 이유는 이것이기도 하다.
홀컵이 있는 그린에 올라가면 85cm(33인치) 길이의 퍼터전쟁이 시작된다.
캐디가 라이를 봐줘야 하는 그린플레이.
프로시합에선 캐디와 선수가 상의를 하고 골퍼가 직접 자신이 치고자 하는 방향으로
공을 놓는다.
하지만...
골프장의 현실은 캐디가 그린의 울퉁불퉁한 라이를 보고 라인을 놔주는 일을 한다.
내 왼손에는 수많은 골프채가 들려있고, 마크를 한다고 쭈그리고 앉은 채 공을 닦고 라인을 놔준다.
그렇게 한분 한분,
그린에서 네 명의 공을 놔주기만 해도 18홀 x4 = 72번의 절을 한다.
저건 최소한의 라인 놓는 횟수인 거고, 1 퍼터에 끝낼 수 있는 실력 있는 분들이라면 직접 놓으시는 분들도 많은데 여자골퍼들은 의존도가 높기에 3 펏, 4 펏까지 내손에 공을 주시거나 놓아주지 않으면 멀뚱히 선 채 치지 않으시는 분들이 수두룩 하다.
그녀들의 소소한 리그(돈을 건 내기)가 시작되면 내 긴장감은 바짝 올라간다.
-내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말하고 싶다-
사포들의 내기에는 정말 '얄짤없음'이라는 말이 딱 맞고, 그걸로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들을 매우 많이 봤다.
그렇게 퍼터 하나의 길이로 재고 따지고 들어간다.
그린에선 정해둔 선을 조금만 넘어도 오케이 없이 끝까지 퍼터를 해야 하고, 내 무릎은 또 쉴 새 없이 구부렸다 폈다가 반복된다.
무릎이 쑤셔오고 물이 차오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져도, 하루치 일당 몫을 위해 나는 내 남은 관절을 조금씩 깎아서 파는 행위에 가까운 일을 해 나간다.
어쩌랴 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내 할 일은 해야지.
거기다
꼭 라이를 놓아줘야 해서 불평을 하는 건 아니다.
놓아드리고 알려드린 라이로 홀컵에 떨어지는 "땡그랑" 소리를 내며 공이 떨어지면 플레이어뿐만 아닌 나의 도파민까지 터지게 만든다.
라이를 본인이 놓아야 하는 이유를 모른 채 캐디 탓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보람이란 것 자체가 사라지며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간다.
골프가 익숙해지고 라운드를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캐디와 라이에 대해 상의하고 자기 눈에 맞게 라인을 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 또한 연습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양쪽눈은 지배적 눈에 따라 좌시, 우시가 다르기에 사람마다 공을 놓는 라인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나는 좌시인지라 우시인 분들을 만나면 경력 15년 차인데도 여전히
"좌측을 많이 본 것 같아"
라는 지적받는 상황이 생긴다.
어떤 분과는 기가 막히게 잘 맞지만 어떤 분과는 아무리 성심성의껏 놔드려도 너무 왼쪽으로 선을 놓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일일이 설명드릴 수 없기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내 탓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뭉그러진다.
완전 초보분들이라면 라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가기에 도와드리고 싶어
되려 내가 나서서 놔드리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구력이 20년이 넘었다고 말씀하시는 여성분들이 1미터 조금 넘는 직선의 라이조차 놓아달라고
하는 순간은... 나 역시 표정관리에 실패한다.
캐디에겐 당연히 좋은 백(bag), 나쁜 백(bag)이 존재한다.
그렇게 캐디들은 항상 일을 시작하며 오늘의 내 일진을 점쳐본다.
좋은지 나쁜지 그날의 팀을 보면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여성골퍼라고 다 힘들고 위의 상황이 생긴다고 말하는건 당연히 아님을 아실 거다.
정말 매너 좋으시고 잘 치시는 멋있는 분들도 많고, 최근엔 매체에서도 골프 매너나 룰에 대해 공공연히 비쳐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스스로 하시는 분들도 많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포를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다.
최대한 저런 분들은 피하고 싶은 건 무조건 사실이다.
죄송한 말이지만 이왕지사 같은 돈이라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하거나, 뿌듯하게 만족감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그저 사모님들의 놀이터가 아닌,
골프를 사랑해서 진심으로 대하는 여성골퍼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