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
처음 신입으로 입사를 하고 초보 캐디일 때였다.
나보다 위의 기수들에겐 무조건 선배라는 호칭을 쓰라는 회사의 룰이 있었다. (언니 안됨!)
운동부 시절에 힘든 기강으로 힘들었던 나조차도 뭐 이렇게 혹독한 세계가 있는가 싶었다.
출근하고 화장실을 가는 길.
지나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분명 출근해서 마주쳤고 인사도 드렸던 사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날!! 골프장의 선배들에겐
'인사 안 하고 다니는 건방진 신입'
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사전적으로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 또는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요즘은 남자캐디의 비중도 조금 늘었다곤 하나 여전히 대부분의 골프장에 여자캐디가 현저히 많다.
그런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같은 여자로서 살아남기는 결코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
세상일 모든 것에 무조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특히,라는 말들이 붙는 것들이 있다.
텃세에 있어서 여초 집단 특유의 예민한 기싸움이나 텃세가 존재한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약 6,70명의 여자들이 모여있는 캐디그룹에서 텃세를 부리는 언니들의 행동은 매우 매우 흔한 일이었다.
신입이 되면 모두의 눈치 대상이 되고 작은 실수에도 여러 명의 잔소리가 쌓인다.
사실 실수야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것일 수 있지만, 충고성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관리자라는 이름의 몇 명이면 족할 것 같은데, 캐디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돌아가면서 지적을 당하는 통에 기 한번 못 펴보는 어린 신입들이 수두룩하다.
신입들 중 약간 덤벙거리거나 순하게 생긴 아이들이 특히나 타깃이 되어 끝내 버티지 못하고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한 채 다른 곳으로 떠나는 캐디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여자들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것조차도 보통의 성격들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첫 만남 첫인상이 중요다고 한다.
그만큼 첫인상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순간 돌이키기 힘든 것 또한 사회생활의 인간관계인 것 같다.
캐디는 근무를 시작하기 전 동료캐디와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근무 1시간 30분 전에 출근하고 일할 준비를 마친다.
고객님들을 만나고 정리하고 퇴근.
이 모든 일들을 혼자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게 캐디의 일이다.
함께 준비하고 근무하는 일 없이 오롯이 혼자 하는 것이다.
만약 나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잘못 박히면 그걸 만회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70명 이상이 근무하기에 1년에 몇 번 말할 기회도 별로 없는 동료 캐디들도 많은 곳에서 어떻게 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시 좋은 이미지를 심을 수 있을까.
근무는 순번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와도 나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굴도 잘 모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서로 번호가 멀리 있는 나의 귀에까지 누군가 신입이름이 들어온다.
그때부턴 그녀의 험담이 시작되고 잔소리 폭풍, 괴롭힘이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신입은 확실히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릴수록 언니들의 텃세가 심하고 만만해 보일수록 가만 두지 않는 경우는 세상 살아가면서 모두 겪어보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선하게 생긴 얼굴을 가졌다.
덩치는 조금 큰 편이지만 착하게 생긴 얼굴 탓에 조금 만만하게 보는 기존 언니들(선배들)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운동할 때의 에피소드를 꺼내놓기도 했고, 배구공을 때리던 그때의 스파이크 동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간...
'무서운 애니까 건드리지 마라'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고, 지금까지는 꽤나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캐디는 어차피 협동이 필수인 직업도 아닌데 왜 쓸데없는 일에 본인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일까.
낯설다고 밀어내고 깎아내릴 필요 없다.
오래 있었다고, 나약해 보인다고, 그저 신입이라는 이유로 괴롭히고, 타깃으로 삼는 행동들을 하는 분들.
먼저 왔다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없음을, 타인을 깎아내려 얻은 우월감은 결코 오래가지 못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텃세라는 게 무서운 신입들도 있겠지만, 결국 남는 자는 버티는 자고,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잘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