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만 하면 끝? 우리가 진짜 바라는 대처

성희롱에 대처하는 법

by 서코지


17년쯤에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우리나라 또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즈음 골프장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손녀뻘 되는 캐디에게 성추행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꽤 큰 파장이 일어난 사건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골프장 내에서 성희롱이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체감한 게 말이다.


그전까지는 들려도 못 들은 척, 당해도 '이 시간만 참고 넘기면 된다'는 잘못된 (내 ) 마음가짐으로 캐디들도 이슈를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앞에서 벌이는 그들의 음담패설은 너무 많아 세어보기도 힘들었다.


최근에는 정말 우리나라에도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많이 올라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닌 건 분명하다.




더러운 날.


함께 근무하던 20대 초반의 예쁜 캐디가 있었다.


우리가 근무하는 곳은 회원권이 꽤 비싼 회원제 골프장.


어떤 회원께서 대기업의 높은 직급에 있는 손님을 한분 모시고 온 상황이었다.


골프를 치러 왔으면 그것에만 집중하면 될 것을 그 손님께서 굳이 캐디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그 20대의 캐디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진행실(골프장의 캐디소속팀)에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며 더 이상 이 팀과는 라운드를 못하겠다 말했다.


당장 그 팀의 라운드가 중단되어도 모자랄 판의 성추행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 팀들은 캐디만 교체한 채 그날의 18홀 라운드를 모두 종료했다.


골프장 대표와 손님, 캐디가 만나 3자 대면을 시작했다.

손님도 엉덩이를 만졌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 당시 골프장 대표의 우격다짐 식의 미흡한 대처가 가관이었다.


"손님은 (엉덩이 만질걸) 인정했으니 사과하세요!

손님이 사과하니 캐디는 사과받으세요!"


두 사람사이에서 대표는 그 말만을 강력하게 반복하곤 대충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였단다.


과연 이게 사과를 한 것이고,

저런 사과도 했다고 받기만 하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듯 끝이 날까.


억지로 얻어내는 사과만을 무조건 받은 채 그렇게 넘겨야 하는 걸까.


캐디들은 저런 대처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고, 성추행이나 하는 자와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


내가 일하는 일터에 저런 자가 또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감옥까지는 못 넣을 정도라도 또다시 골프장에 내장해 나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게 싫은 거다.


그를 만나면 예전에 느꼈던 모욕감, 수치심, 혐오감 등의 감정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까.


골프장 측의 대처는 어이없는 사과를 받고 그나마 다행히도 "내장금지" 명단에 그 손님이 올라갔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사실 인간이라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못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지만..



당시 그 손님을 모시고 온 회원 입장에서도 난감한 상황.


골프장 "내장금지"라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 것인가.





이런 돈은 받지 않겠다.



언젠가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꽤나 큰 기업의 법인회원이었다.


그 회원과 함께 내장한 고객 한 명이 볼을 잘 못 치는 편이었기에 8번 홀까지 보기도 못하던 상황이었다.


9번 홀에 와서야 간신히 보기를 한 그 손님은 지금까지 공을 못 친 자신 때문에 고생한 캐디에게 미안했던지

만원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까지 못 치는 나 때문에 고생했어.

버디값은 못 줘도 보기 값은 줘야지."


그 말을 들은 캐디의 옆에 앉아 있던 회원이라는 자가 손님의 돈을 밀어내며 자신의 지갑에서 만원을 꺼냈다.


"내가 줄게 내가. 자 이거 XX값"


차마 적을 수도 없는,

여성신체에 대한 단어를 넣은 모욕적인 말이었다.


전해 들은 나도 회원이란 자가 저런 말을 했다는 걸 믿기조차 힘들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저급한 단어를 쓰는 성추행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싶었으니 말이다.


캐디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곧장 진행실에 보고했고, 전해 들은 대표가 곧장 내려와 사실을 확인했다.

(다행히 위 사건때와 다른 대표님)


그 팀은 절반의 라운딩을 남겨뒀지만 강제종료 당한 채 쫓겨나다시피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건의 회원이 근무하는 회사에도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며 그는 회원권도 박탈당했다.


캐디들은 그나마 지난번 가는 다르게 시원스럽게 대처한 대표 덕분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다.


회사에서 캐디를 도와주고 아껴준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보였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심각한 성희롱'이기에 나름의 시원한 대처를 한 것처럼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별 이유 없이 캐디에게 "이 ㄴ이!"라는 말과 함께 때릴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던 회원조차도 내장금지 6개월에 끝나는 일이 다반사다.



예전에 비하면 조금 나아진 정도의 성희롱 대처법이지만, 회사도 캐디도 확실하게 거절하고 "싫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둬야 할 것 같다.



물론 골프장을 내장하는 고객들 중에 여전히 좀 더 바르고 건강한 인식을 가졌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적인 농담 말고도 즐겁게 대화할 거리는 충분히 많다.


저급한 농담은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반자들이 대신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가 흔들리며, 캐디의 눈치를 보고, 말리고, 말을 돌리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자신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행동과 말을 내뱉기보다, 서로의 존중이 담긴 대화로 필드를 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