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에 대한 대처
2026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골프장에서의
성희롱은 일어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캐디의 80%가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기사가 뜬다.
나 역시 이러한 실정의 골프장에서
15년을 일하며 (심하든 심하지 않든)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
성희롱도 성추행도 다 겪어 본 바다.
몇 주 전에도 내가 근무하는 골프장에서
성희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받을 일도 없는 교육이지만 요즘은 꼭 받아야 하는 교육이 되어 버렸다.
몇 해 전 미투 운동이 일어나며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건 확실한 것 같고, 내가 시작했던 시기에 비해 요즘은 현저히 줄어든 것 같긴하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처음 캐디를 시작했을 무렵 이천 년 후반.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때인 것 같다.
내가 겪은 것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골프의 대중화가 덜 되어 있을 때다.
주로 연세 지긋하게 드신 네 분의 남성 고객과
2, 30대의 젊은 여성 한 명이 4시간 이상을 함께 라운드를 도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차마 내 입에는 담지도 못하겠는 말들을
농담이랍시고 서로를 향해 던지는
아저씨 골퍼들의 사이에서
그저 못 들은 척, 덤덤한 척,
내 할 일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끼리 하는 농담이라 치부하겠지만
나는 더러워지는 귀를 애써 닫고 싶어 하며
시선을 돌리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약한 표현들을 적자면
"캐디 예쁘면 공이 안 맞는데 오늘 공 안 맞겠네"
갑자기 캐디의 얼굴 평가, 몸매 평가 하시는 분.
정말 칭찬 일수도 혹은 약간 '돌려 까기'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이라곤 본다.
이 정도도 참지 못하면 캐디는 못하는 것이지.
"다른 캐디는 버디 하면 노래도 불러주던데 버디하나 하면 너도 노래 불러주느냐?"
"너는 왜 이렇게 살이 쪘느냐. 캐디 때문에 카트가 좁네"
내가 들은 것들 중 많이 약한 수위의 말들이다.
이렇듯 어이없는 대사들이 시시각각 많이도 나왔었다.
강한 수위의 말들도 많이 들었지만 차마 적지 못한다.
마치 아저씨들이 모두 같은 성희롱적 멘트를
어디선가 배워 온 듯,
비슷한 패턴들이 난무했다.
"언니도(캐디를 부르는 호칭- 요즘은 저런 분들 별로 없으시지만 예전엔 으레 언니라고 불렀다.)
19홀 같이 갈까?"
이곳엔 이야기할 수도 없는,
골프라는 스포츠에 빗대어 음담패설을 하는
분들을 수없이 만났다.
카트 뒤에 실려 있는 골프백들에
고객님들이 쓴 클럽을 정리해 넣으려고 서 있을 때였다.
무언가 쓱- 내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뭐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고객 한 분이 내 등 뒤로 가깝게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내 느낌엔 그분이 의도를 가지고
스치며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실수로 양쪽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건 꽤나 힘든 일 아닐까)
그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는 듯 정면을 주시한 채 지나가 버리는데
이런 상황에 처한 20대의 나는 뭐라 해지 못 한 채였다
의심하고 소리쳐야 했을까?
당시의 나는 끝내 확실하지 않은 일로 분란을 일으킬 용기가 없었기에 참고 말았다.
고작 4시간만 참으면
고객인 이 사람은
앞으로 만나지 않을 확률이 더 크고
확실히 만지려는 의도가 있는 것 또한 확실하지 않잖아.
실수겠거니 하고 애써 넘겼다.
하지만
그런 수법에 몇 번을 당하자.
(역시 실수들이 아니었던 것이지!)
세상은 넓고 저런 X들은 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이상은 같은 수법에 당하고 싶지 않았다.
고객이 뒤로 지나가는 것 같으면
살짝 몸을 반정도 틀어 돌아 서거나
허리를 쑥 집어넣으며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걸 보게 됐다.
실수든 아니든 찝찝한 일들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뭐라 할 용기도 없는
내가 조심하자 싶었다.
가장 처음 캐디를 시작한 골프장에서
20대에 그런 일들을 가장 많이 겪었다.
다른 곳 보다도 그곳에 고객들이
조금 질이 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캐디의 일할거리 중 하나, 카트 운전
60대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고객분이 운전석의 옆자리에 앉은 채 내가 운전하는 카트는 앞으로 이동했다.
카트엔 그분과 나.
단 둘 뿐이었다.
그분이 무언가 느끼한 멘트를 치며
내 허벅지에 손을 쓱 올렸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당한 건 처음인지라
나는굳은 채 그 어떤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내 오른손으로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
그의 더럽게 느껴지는 손을 덥석 잡아 들어 올려
팍! 패대기쳤다.
정말 내 몸에서 치운 정도가 아니라
앉아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패대기! 쳤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고객은 "엌" 하는 외마디 소리를 나지막하게 질렀고,
카트에는 정적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심하게 화를 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사실 지금이라고 얼마나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당황하면 그런 순발력이 금방 나오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한다.
그래서 미리미리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꾸준히 시뮬레이션해둬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저런 더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나 자신을 자책했다.
저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그런 사건이 터졌을 때 올바른 대처를 못했고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져야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화를 내었어야 저런 자들이 호되게 당한 뒤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른 곳에 가서 저따위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하는 자책도 함께.
나는 운동선수 시절.
윗사람을 공경하고 공손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코치와 감독에게 매를 맞을 때조차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법을 배워야 했었다.
아직도 캐디는 서비스직이라는 내 의식 속에서
어린 시절 저런 교육을 받고 자란 내가,
나보다 20년 이상씩 더 살아오신 사람들의 면전에 대고,
성희롱을 당했다곤 하나 막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는 않는 거다.
(그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한 걸까?)
저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미리 대처하는 방법들에 대해
스스로 많은 연습들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