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아바타를 조종했던 날
화창한 오후 4명의 여성팀을 나갔다.
1번 홀 드라이버 티샷을 마치고 세컨드샷을 하러 이동했다.
"고객님, 160M 남았습니다. 어떤 클럽 쓰세요?"
비거리가 짧은 여성골퍼들은 주로 우드나 유틸을 잡는다는 걸 알지만 1번 홀이니 주로 어떤 채를 쓰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쭤봤다.
하지만 되려 그분은 나에게 되물었다.
"저 몇 번 쳐야 돼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아!"하고 외쳤다.
머릿속에 삐용삐용 비상등이 켜진 것 같았다.
이분을 처음 뵙는데 내가 무슨 수로 비거리를 알아맞힐까.
'이제 시작인데 남은 홀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이런 분과 함께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첫인상이 다는 아니라 믿고 다시 여쭤봤다.
"우드 쳐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면 1번 홀은 몸 안 풀리셨으니까 유틸 드릴까요?"
"우드요? 그게 뭐예요? (이름도 몰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건 쳐봤어요"
정말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이런 시련은 필요 없습니다. 가혹하시잖아요'
딱히 종교가 있지 않은 나였지만 속으로 수십 번
'오 마이 갓'
을 외쳤다.
아직 1번 홀.
3번째 샷을 할 때 역시 그분은 내 기를 꽉 막히게 했다.
70m 남았다고 알려주자 또다시 물었다.
"저 몇 번 쳐야 돼요?"
이건 정말 심하지 않은가?
나는 이날 그분을 처음 만났고, 첫 홀인데 되려 나에게 물어보시는 건 내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알게 했다.
내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맞힐까.
아무리 용한 무당이 와도 이건 못 맞출 만큼 어려운 문제!
"..... 음... 대부분 이 정도 거리에서 피칭이나 9번 아이언 치시는데..."
"저 정말 몰라요. 캐디님이 아무거나 주세요."
그 말조차 별스럽지 않은 듯 말하는 분을 보며
그렇게 그날은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 절대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아바타를 조종하는 느낌으로 일을 끝마쳤다.
꼬박꼬박 존대해 주시고 순순히 따라와 주시며 고맙다 인사해 주셨기에
그나마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도 무지하게 골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필드에 나오신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스포츠엔 룰이 있고 도구나 지켜야 하는 매너들이 있다.
그중에 골프는 좀 더 많은 룰과 필요한 도구들이 많은 건 분명하다.
그래서 배울 것도 많고 어느 정도는 분명 학습을 하고 나와야 하는 스포츠 같다.
죄송하게도
국내 골프장의 현실은 해외처럼 유유자적 플레이를 즐기고 룰을 익히며 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빨리빨리'가 미덕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준비되지 않은 라운딩은 본인뿐만 아니라 동반자,
그리고 그들의 필드 매니저가 되어야 하는 캐디에게는 지독한 시련이 된다.
캐디가 싫은 소리를 하며 골프에 대해 알려드리긴 힘들다.
나 역시 싫은 소리는 못하는 사람으로서
굳이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것 같은 캐디는 되지 못한다.
캐디는 골프장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될 수 있어도,
당신의 인생 첫 골프 선생님까지 되기엔 너무도 바쁘게 쫓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