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면의 나

Chapter 5. ‘괜찮다’는 말의 잔인함

by SYKim

“괜찮아.”

이 말을 얼마나 자주, 무의식적으로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셀 수 없다.

누가 무례한 말을 해도, 일정이 밀려버려도, 마음이 다쳐도, 나는 늘 이 말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그리고 그것은 점점 입에 붙은 습관이 되었다.

습관은 곧 나의 언어가 되었고, 나의 언어는 나의 진심을 가렸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고, 울고 싶었고, 때로는 버겁다는 말 한마디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번거롭게 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 이미지에 맞춰 나는 끊임없이 나를 다듬고, 절제하고, 봉합했다.

그러다 어느 날, 더는 숨기지 못할 순간이 왔다.


그날은 평소처럼 바빴다.

몇 시간째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메신저로 동료의 도움 요청을 받았고,

망설임 없이 “네, 괜찮아요. 도와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 한 줄을 쓰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걸 누른 순간 나는 마치 내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꺼져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억울하고, 울고 싶었다.

그런데도 “괜찮아요”를 택했다.

그날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언제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내 안을 맴돌았다.


며칠 뒤, 후배가 조용히 내게 찾아왔다.

눈가가 붉었다. 목소리도 작았다.

“선배, 저 진짜… 괜찮지 않아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이상하게 무너뜨렸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누군가의 ‘괜찮지 않음’에 민감해져 있었다.

그 말이 너무 솔직해서, 너무 부러워서, 너무 나같아서…

순간 나도 울컥했다.

나는 물었다.

“뭐가 제일 힘들어?”

그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힘든 걸 말할 사람이 없어요. 말하면 싫어할까 봐, 짐처럼 느껴질까 봐…”

그 말이 나를 찔렀다. 그것은 과거의 나이기도 했고, 지금의 나이기도 했다.

“말해줘서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방 안에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나도… 사실 괜찮지 않아.”

그 말을 뱉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렇게 많이 남을 위로해왔지만,

정작 내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건, 용기예요.

내 감정에 정직해지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기도 해요.”

나는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괜찮다’는 말은, 위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짓이다.

특히 그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때, 그것은 가장 잔인한 자기부정이 된다.


그 이후 나는 조금씩, 말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조금 피곤해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요.”

“그 말, 솔직히 좀 상처였어요.”

“저도 힘들어요.”

아직도 익숙하진 않지만, 그 말들을 꺼낼 때마다

내 안에서 꽉 막힌 숨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들은 벽을 깨고 나가는 칼이 아니라, 나를 껴안아주는 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괜찮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괜찮지 않음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때로는 ‘괜찮지 않다’는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구하고,

나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