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다정함에 지치다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잘 챙겨?”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은 무심한 듯했지만, 나를 오래 붙잡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괜히 더 신경 쓰였고, 누가 울면 같이 울고 싶었다.
함께 아파주면 그 사람도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고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위로하고, 듣고, 다독이면서 나는 점점 나를 놓쳤다.
모두의 감정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내 마음에는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괜찮은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다정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말이 곱고, 눈빛이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하다 보니, 나는 점점 지쳐갔다.
다정함이라는 갑옷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나의 진짜 마음은 거기에 없었다.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네 감정을 얼마나 많이 눌렀는지 알아?”
그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알았다.
그 사실을.
누군가가 울 때 나도 울고 싶었지만, 대신 등을 토닥였고.
누군가가 내게 기대올 때, 거절하고 싶었지만, 미소 지으며 안아주었다.
무수한 순간마다 나는 나의 본능을 눌렀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나의 감정을 부정하는 방식이었고
점점 내 마음속에 작고 단단한 분노가 쌓여갔다.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를 향한 실망이었다.
“나는 왜 또 참았을까.” “나는 왜 또 도망쳤을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에 지쳤다.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물이 났다.
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눈물은 오래된 피로 같았다.
나는 지쳐 있었고,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못했으며, 그 사실이 더욱 외로웠다.
“너도 누군가에게 기대도 돼.”
그의 말은 늘 나를 아프게 했다.
아픈 말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정작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기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믿는다는 것, 마음을 열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며칠 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냥 네 생각나서. 잘 지내?”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울렸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짧게 말했다.
“응, 그냥 좀 지쳤어.”
“그렇지. 넌 늘 다 챙기느라 그렇잖아.”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일이었구나.
그날 밤,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서 그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정함에 지쳤지만, 그 다정함이 결국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나는 지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다정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다정함은, 내게도 누군가에게도, 마지막 남은 온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