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법
어릴 때부터 나는 감정이란 걸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그냥 속이 불편하고, 뭔가 쎄하고,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올라와도
이게 슬픔인지, 분노인지, 외로움인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그냥 기분이 좀 그래.”
그게 전부였다.
내 마음은 언제나 ‘좀 그런 상태’로 묶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건 곧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말하지 못하면 이해받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늘 내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모멸감이야.”
그는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너는 외롭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시당했다고 느낀 거야.
그게 상처가 된 거지.”
그 말이 이상하게 깊이 들어왔다.
나는 평소처럼 ‘그냥 외롭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느낌, 존중받지 못한 기억이 있었다.
그는 내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이름 하나가 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감정에게 자주 물었다.
“지금 이건 뭐야?”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하지?”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지?”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속이 울렁이는 건, 억울해서였다.
가슴이 조여오는 건, 불안해서였다.
눈물이 나는 건, 참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슬픔이 아니라 지쳐서 그런 날도 있었다.
감정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 감정과 대화하는 일이었다.
대화는 오해를 줄이고,
감정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무심코 지나쳤던 말이 마음을 찔렀다.
사소한 농담이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화가 났다.
처음엔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걸까’ 싶었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라, 속상했던 거다.
그 말이 나를 가볍게 다룬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의 첫 얼굴은 늘 정직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과 실제 내면의 감정은 다를 수 있다.
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처가 있고,
무기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있고,
짜증처럼 보이지만,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감정의 겉포장만 보고 넘기면, 나는 자꾸 나를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감정은 스스로 본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나는 내 감정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룬다.
어떤 감정이 올라오면 먼저 앉아서 묻는다.
“지금 이 기분의 이름은 뭘까?”
그리고 조금 기다린다.
그러면 감정이 천천히 말을 건다.
“나는 실망이야. 기대했는데 무너졌어.”
“나는 외로움이야. 그런데 사실은 이해받고 싶었던 거야.”
감정에게 이름을 붙이는 건,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이해는 결국 사랑의 시작이다.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타인의 감정도 조금씩 읽히기 시작했다.
“화났어요?” 하고 묻기보다는
“속상하셨겠어요”라고 말하게 되었다.
감정은 소리치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아도, 이름만으로도 그 감정은 인정받을 수 있다.
이해받는 감정은 나를 좀 더 덜 아프게 만들고, 좀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지금 이 마음, 네 이름은 뭐야?”
그리고 그 대답을 있는 그대로 들어준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깊고 조용한 다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