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나는 내 편이 아니다
가끔 내가 내 자신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지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그건 꼭, 우연히 거울을 보다가 멍든 곳을 발견한 기분이다.
분명히 누군가 나를 때린 것도 아닌데
어쩐지 이 상처는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처럼 낯익다.
그리고 나는 그때야 깨닫는다.
아, 내가 나를 때리고 있었구나.
시험을 망친 날,
나는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되지’라는 말을 나에게 건네지 못했다.
대신 이런 말을 속으로 반복했다.
“역시 넌 안 돼.”
“넌 항상 이래.”
“그 정도밖에 안 되잖아.”
남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가 할 때는 왠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 이다.
내 안엔 언제나 나를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조금만 부족해도, 조금만 실수해도
그 목소리는 날카롭게 올라왔다.
그 목소리는 부모도, 친구도, 사회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이었다.
“왜 그렇게 자기한테 엄격해?”
누군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마치 내가 살아남기 위해 익숙해진 방식 같았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약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위해,
나는 늘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채찍질이 아니라,
그냥 끊임없는 자기학대였다.
내가 가장 필요할 때 나는 항상 내 편이 아니었다.
무너질 때, 다른 사람은 위로했지만 나는 나를 질책했다.
“왜 또 그 모양이야.”
“넌 도대체 왜 그렇게 한심하니.”
그 말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내 편이 되어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어떤 말이 변명이 되는지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게 더 어렵다.
남에게는 쉽게 말하는 ‘괜찮아’도
나한테는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나를 계속 몰아붙일수록
나는 점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한 말이 뭐야?”
그럴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작게 올라오는 대답이 있다.
“너 잘하고 있어.”
“이해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계속 가고 있잖아.”
그 말들이 비로소 내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를 조금씩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매 순간 내 편을 들어주는 작고 조용한 말들 속에서
천천히 스며드는 감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가끔 나를 미워한다.
아직도 어떤 날은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그걸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만 그런 거야.”
“내가 내 편이 되어줄게.”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세상이 조금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든든한 편은
결국, 내가 되어줘야 한다.
아무도 없는 밤, 내 마음을 껴안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