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믈 추자. 만남이 모두 인연인 것을
탈춤 ㅡ연재
전 진식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네가 나를 알 수 없는 데 있다
춤을 추자
만남이 모두 인연인 것을,
손을 잡고
눈빛이라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휘파람이 되고
울고 있어도 웃고 있는 돌개바람이 되어
사는 게 무언지
춤을 추자
덩실덩실
마주보는 사랑이 되어 웃어 보자
자유는 하늘에 있고
너는 나를 모르고
나도 너를 알 수가 없고
***감상문
전진식시인의 [탈춤]을 읽고
경성대 문창과교수 문인선
전진식 시인의 시 「탈춤」은 ‘자유’와 ‘만남’, 그리고 ‘존재의 거리감’이라는 깊은 주제를, 우리 전통의 몸짓 ‘탈춤’을 통해 시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알 수 없음, 곧 ‘너는 나를 모르고 / 나도 너를 알 수가 없고’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로 이 거리감이야말로 자유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 네가 나를 알 수 없는 데 있다’는 시구는 그 증거다.
시의 중심 이미지는 ‘춤’이다.
탈춤은 웃음과 눈물, 익살과 풍자의 언어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전통 예술이다.
시인은 이 춤을 ‘덩실덩실’ 추며 서로 손을 잡고 눈빛을 나누는 만남으로 묘사한다. 이 만남은 억지로 알거나 해석하려는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교감하며 함께 숨 쉬는 ‘사랑’이다.
마주 본다는 것, 손을 잡는다는 것,
눈빛을 나눈다는 것은 말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깊은 유대감을 상징한다.
시 후반부로 갈수록 시인은 다시금 ‘자유’의 개념으로 돌아간다. 자유는 ‘하늘’에 있고,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는 상태에 머문다.
하지만 그 모름이 거리감을 만들고, 그 거리 속에서 우리는 웃고 울며 춤추듯 살아간다. ㅈ
시는 결국 존재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만남과 사랑, 그리고 자유를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는 단지 탈춤을 묘사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사유이자, 동시에 존재의 슬픔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시적 몸짓이다.
읽고 나면 어느덧 마음속에서 ‘덩실덩실’ 춤사위가 피어난다.
그것은 단지 발의 움직임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조용한 인사이자 삶을 향한 깊은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