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40%의 공룡이 수면과 경쟁해야 하는 이유
1942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안정이 아니라 파괴라고. 그는 "마차를 연결한다고 기차가 되지 않는다"는 비유로, 혁신이란 기존 질서의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창조임을 설명했다.
2025년 국내 OTT 시장. 넷플릭스가 MAU 1,393만 명, 점유율 40%로 독주하고, 쿠팡플레이 21%, 티빙 17%가 추격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 3억 명을 돌파하며 압도적 선두를 지킨다. 숫자만 보면 '과점'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질문 하나.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정말 티빙과 쿠팡플레이뿐인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핵심은 산업의 경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OTT 시장의 지배력을 논할 때, 우리는 먼저 '시장'이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시장집중도를 측정하는 표준 도구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다. 각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제곱해 합산한 값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HHI 1,500 미만을 비집중, 1,500~2,500을 중간 집중, 2,500 초과를 고도 집중 시장으로 분류한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유사한 기준을 적용한다.
계산해보자. 2025년 6월 기준 국내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 40%, 쿠팡플레이 21%, 티빙 17%, 웨이브 7%, 디즈니플러스 6%라면, HHI는 대략 2,411이다. '중간 집중' 수준이다. 고도 집중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전제가 숨어 있다. '국내 OTT 유료 구독 서비스'라는 시장 정의다. 유튜브는 빠졌다. 틱톡도 없다. 네이버 시리즈온, 카카오페이지, 스포츠 중계 플랫폼도 제외됐다. 시장을 어디서 자르느냐에 따라 같은 넷플릭스도 지배자가 되기도 하고, 경쟁에 쫓기는 도전자가 되기도 한다.
2023년 미국 법무부와 FTC가 발표한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은 HHI의 기계적 적용에 제동을 걸었다. 과거처럼 HHI 수치만으로 '안전지대'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숫자는 출발점일 뿐, 결론이 아니다.
시장 정의의 문제는 OTT에서 더 극명하다.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켜지 않는 이유가 티빙 때문인가, 유튜브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잠이 와서인가.
경제학 교과서는 과점을 '소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과점의 표면만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적 상호의존'이다.
완전경쟁 시장에서 개별 기업은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가격수용자라 불린다. 독점 시장에서 기업은 경쟁자의 반응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점은 다르다. 내가 가격을 내리면 상대도 내린다. 내가 콘텐츠에 투자하면 상대도 투자한다. 모든 결정이 상대의 반응을 전제한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전략 게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과점 시장에서 가격 경쟁은 치킨게임이 된다. 한 기업이 가격을 내리면 다른 기업도 내릴 수밖에 없고, 모두의 마진이 급락한다. 경제학에서 이를 베르트랑 경쟁이라 부른다. 제품이 동질적이면 가격 인하 경쟁은 결국 모두를 한계비용 수준까지 끌어내린다.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과점 기업들은 가격 대신 다른 곳에서 싸운다. OTT 시장을 보라.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모두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한다. 월 1만 원 안팎의 구독료는 암묵적 균형점처럼 자리 잡았다. 대신 오리지널 콘텐츠, 독점 IP, 추천 알고리즘, 스포츠 중계권을 놓고 경쟁한다.
2025년 넷플릭스의 글로벌 콘텐츠 투자액은 180억 달러, 한화 약 25조 원이다. CFO 스펜서 노이만은 "180억 달러는 상한선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 밝혔다. 쿠팡플레이는 K리그, 분데스리가에 이어 EPL, NBA 중계권까지 확보하며 '스포츠 콘텐츠'라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티빙과 웨이브는 2025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받아 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비가격 경쟁의 양면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콘텐츠 품질이 올라가니 후생이 증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진입장벽도 높아진다. 연간 25조 원을 콘텐츠에 쏟아붓는 넷플릭스와 경쟁하려면, 신규 진입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감당해야 한다. 고정비가 진입장벽이 되는 구조다.
반복게임에서 기업들은 학습한다. '오늘 싸게 팔면 내일 보복당한다.' 담합은 회의실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시장구조 자체가 협조를 유도할 때, 가격은 암묵적으로 유지된다. 경제학은 이를 묵시적 담합(tacit collusion)이라 부른다.
묵시적 담합이 작동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기업 수가 적어야 하고, 가격이 투명해야 하며, 제품이 유사해야 한다. OTT 시장은 이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한다. 주요 플레이어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쿠팡플레이 정도로 한정되어 있고, 구독료는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으며, 제공하는 서비스(동영상 스트리밍)는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규제기관이 명시적 담합뿐 아니라 '협조를 유도하는 시장구조'까지 살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업들이 회의실에서 만나 가격을 합의하지 않아도, 시장구조 자체가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가격을 비교하지만, 기업들은 서로의 다음 수를 읽는다.
과점 논의의 핵심은 결국 '지배력'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지배력은 가격결정력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더 정확한 지표는 '주의(attention)'의 점유다.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디즈니플러스만이 아니다. 유튜브가 있고, 틱톡이 있다. 모바일 게임이 있고, 인스타그램 릴스가 있다. 심지어 수면 시간과도 경쟁한다. 넷플릭스의 CEO가 "우리의 경쟁자는 수면"이라고 말한 적 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본질을 찌른다.
전통적 반독점 분석은 SSNIP 테스트를 사용한다. '작지만 유의미한 가격 인상'에 소비자가 어디로 이탈하는지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OTT의 가격이 월 1만 원 수준이고, 유튜브는 기본 무료라면, 가격 테스트가 의미 있을까. 가격이 0원인 경쟁자를 상대로 가격 기반 시장획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한계를 드러낸다.
지역신문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어떤 지역신문이 해당 지역에서 100% 점유율을 가졌다고 하자. 전통적 시장 정의로는 독점이다. 그러나 그 지역 주민의 여가 시간을 두고 신문은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톡과 경쟁한다. 점유율 100%가 실질 지배력 100%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산업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의 경제학적 의미다. 과거에는 신문과 방송, 방송과 영화, 영화와 게임이 서로 다른 산업이었다. 이제는 모두 '저녁 8시 이후의 시간'을 놓고 경쟁한다. 시장의 경계가 상품 기준이 아니라 소비자 행동 기준으로 재정의되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경쟁의 단위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한다. OTT의 진짜 시장은 '월 구독료를 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녁 8시에 뭘 볼지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다.
과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격이 한계비용 이상으로 유지되고, 소비자잉여가 줄어들며, 사중손실이 발생한다. 표준적인 반독점 논리다. 소비자는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사회 전체의 효율은 떨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과점이 '악'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슘페터의 관점이다. 큰 기업만이 막대한 R&D와 콘텐츠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 OTT처럼 고정비(콘텐츠 제작비, 플랫폼 유지비)가 크고 한계비용(추가 시청자 1명의 비용)이 낮은 산업에서, 규모는 효율을 만든다.
넷플릭스가 연간 25조 원을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3억 명이 넘는 전 세계 구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2024년 4분기에만 1,890만 명이 순증했고, 2024년 연간 영업이익은 사상 최초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 규모의 경제가 없다면 '오징어 게임'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 정태적 효율(낮은 가격)을 희생하는 대신 동태적 효율(혁신과 품질 향상)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판단의 출발점에 있다. 과점 여부를 논하기 전에, 시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결론은 크게 달라진다.
OTT 시장을 유료 구독 서비스로 좁게 정의하면, 넷플릭스는 지배적 사업자다. 동영상 스트리밍 전체로 넓히면, 유튜브가 압도적 1위다. 여가 시간 전체로 확장하면,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
같은 숫자도 시장 정의에 따라 과점이 되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규제기관의 첫 번째 과제는 HHI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선을 그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 선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긋느냐에 따라 규제의 방향이 결정된다. 잣대를 쥔 자가 결론을 쓰는 셈이다.
HHI가 몇이냐를 묻기 전에, 시장을 어떻게 자를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시장집중과 과점에 대한 논의가 반복될 때마다 같은 함정에 빠진다. 숫자에 매몰되어 전제를 점검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산업 분석에서 실무자와 정책 결정자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정책 결정자: 시장을 정의할 때, 전통적 산업 분류가 아닌 소비자 행동 기반의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OTT 규제를 논하면서 유튜브와 틱톡을 제외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검토하라.
2) 시장 참여자(투자자·기업): 시장점유율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실질 경쟁이 어디서 벌어지는지 파악하라. 콘텐츠 투자, 데이터 기반 추천, 글로벌 확장 역량이 과점의 진입장벽을 만드는 요소다.
3) 개인(소비자·연구자): '주의의 경제'에서 점유율 100%도 지배력 100%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디지털 경쟁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4) 제도 설계자: HHI의 기계적 적용을 경계하라. 2023년 미국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처럼, 구조적 지표 외에 실질적 경쟁 효과를 함께 평가하는 체계로 전환하라.
5) 연구자: 디지털 플랫폼의 양면시장 특성, 네트워크 효과, 전환비용을 반영한 새로운 시장획정 방법론을 개발하라. 전통적 SSNIP 테스트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Schumpeter, J. A. (1942).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New York: Harper & Brothers.
미국 법무부·연방거래위원회. (2023). 2023 Merger Guidelines. Washington, D.C.: U.S. Department of Justice.
와이즈앱·리테일. (2025). OTT 서비스 앱 사용자 현황(2025년 6월 기준). 서울: 와이즈앱.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방송영상 OTT 트렌드. 나주: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거래위원회. (n.d.). 허핀달-허쉬만 지수(HHI) 해설. 세종: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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