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도시는 완공 이후에 시작된다

모리빌딩 힐스 시리즈가 한국 재개발에 묻는 질문은 무엇인가

by 김선철
Gemini_Generated_Image_9cv11f9cv11f9cv1.png

1. 34년을 기다린 도시의 문법


하이데거는 1951년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에서 건축의 본래 의미를 되짚었다. 고대 독일어 'buan'은 건축하다가 아니라 거주하다를 뜻했다. 건축은 곧 존재의 방식이며, 짓는다는 것은 머무른다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이 2023년 11월, 도쿄 미나토구에서 다시 보인다. 아자부다이 힐스가 34년 만에 베일을 벗었다. 1989년 마을 만들기 협의회 설립부터 2023년 개장까지, 300명의 권리자를 2,000회 넘게 만나며 90%의 동의를 이끌어낸 시간이었다. 총 공사비 6,400억 엔(약 5조 6,000억 원).

왜 한 도시의 완성에 한 세대의 시간이 필요했는가.


2. 힐스가 쌓아 온 37년의 궤적


모리빌딩의 도시 실험은 1986년 아크 힐스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최초의 민간 대규모 재개발이자, 산토리 홀을 품은 직주락(職住樂) 모델의 원형이다. 17년에 걸친 주민 설득 끝에 완공되었다.


2003년 롯폰기 힐스가 문을 열었다. 모리타워 최상층 53층에는 펜트하우스 대신 모리 미술관이 들어섰다. 임대료가 가장 비싼 자리에 문화를 올린 역발상이었다. 연간 수천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도쿄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최상급 임대료를 받는다(출처: 모리빌딩 공식사이트).


2014년부터 2023년까지 토라노몬 힐스가 완성되었다. 환상 2호선 도로가 건물 지하를 관통하는 입체도로 제도를 활용해, 도로 상부를 녹지와 광장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아자부다이 힐스가 이 생태계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부지 8만 1,000㎡ 중 2만 4,000㎡를 녹지로 남기고, 그 위로 일본 최고층 330m의 모리JP타워를 세웠다.


이들은 도쿄 미나토구라는 하나의 행정구 안에서 도보권으로 연결된다. 점이 아니라 면으로 작동하는 도시 생태계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리빌딩은 짓고 나서 떠나지 않았다.


3. '짓고 떠나는 모델'이 말하지 않는 것


한국의 재개발 문법은 단순하다. 짓고, 분양하고, 떠난다. 준공 시점에 분양매출이 한 번 크게 솟고, 그 돈으로 PF를 상환하면 시행사의 역할은 끝난다. 이른바 'Sell & Leave' 모델이다. 완판이 목표이고, 완판 이후에는 현금흐름도 관심도 끊긴다.


모리빌딩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Own & Nurture'—소유하고 가꾸는 모델이다. 분양 차익 한 번이 아니라 20년에서 30년에 걸친 임대 운영수익을 축적한다. 이벤트와 리뉴얼로 공간을 계속 새롭게 만들어, 노후화가 아니라 빈티지 가치로 키운다. 목표는 완판이 아니라, 주변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다.


업의 정의가 다르다


이 차이는 수익 구조의 차이가 아니다. 업(業)의 정의가 다른 것이다. 한국형 모델은 부동산 개발을 '건설업'으로 본다. 콘크리트와 면적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이다. 수익은 한 번에 크게 나고, 이후 운영은 분절된다. 모리빌딩은 개발을 '서비스업', 나아가 플랫폼 사업으로 본다. 핵심 상품이 건물이 아니라 경험과 브랜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세 가지 원리가 작동한다.

첫째, 집적 경제다. 직장·주거·문화·휴식을 한 공간에 묶어 이동 시간을 없앤다. 시간이 절약되면 유동이 늘고, 유동이 늘면 매출이 커지고, 임대료 프리미엄으로 연결된다.

둘째, 포트폴리오 이론이다. 주거·오피스·리테일·문화가 섞여 있으면 낮에는 직장인이, 밤과 주말에는 거주자와 방문객이 공간을 채운다. 한쪽이 꺾여도 다른 쪽이 받쳐주는 리스크 분산 구조다.

셋째, 코즈의 정리다. 흩어진 권리를 하나의 법인으로 묶어 의사결정 창구를 단일화하면, 도시에서 가장 비싼 비용인 마찰 비용이 급격히 줄어든다.


롯폰기 힐스 광장에 서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은 배에 알을 품은 어머니를 상징한다. 도시는 이방인까지 품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고,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관계를 시작한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장치다.

이런 장치는 분양 후 철수하는 모델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 남아서 운영해야만 유지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가장 비싼 최상층에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미술관을 올리는 결정, 상업면적을 더 넣는 대신 중앙에 거대한 광장을 만드는 결정—이것은 단기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장기 브랜드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분양 후 철수하는 구조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의사결정이다.

"도시는 완성품이 아니라 업데이트되는 플랫폼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4. 시간이 적이 될 때, 시간이 자산이 될 때


한국 아파트는 시간이 흐르면 낡는다. 관리가 약해지고, 품질이 떨어지고, 가치가 내려간다. 시장은 결국 재건축이라는 리셋 버튼을 찾는다. 30년 주기로 허물고 다시 짓는 순환이 반복된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평균 약 8.7년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은 밀려나고 갈등은 깊어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개발'이라 부르지만, 실은 시간에 대한 패배 선언이다. 건물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니, 시간을 되돌리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 안에는 더 깊은 심리가 작동한다. 새것에 대한 믿음, 낡은 것에 대한 불안, 그리고 '리셋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모리빌딩은 시간을 적이 아니라 자산으로 만들었다. 아크 힐스는 완공 40년이 지난 지금도 벚꽃 축제와 마르쉐를 통해 커뮤니티가 살아 있다. 롯폰기 힐스는 20년이 넘었지만 끊임없는 리노베이션과 콘텐츠 업데이트로 여전히 도쿄 최상급 임대료를 유지한다. 일본에서는 이를 '경년양화(經年良化)'라 부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깊어지는 현상이다.


비결은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품질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하드웨어와, 콘텐츠·테넌트·동선·이벤트를 강하게 돌리는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다. 나무가 자라고, 축제가 쌓이고, 기억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공간은 숲처럼 우거진다.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전제가 있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34년은 건물을 올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300명의 권리자를 한 사람씩 만나 재입주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제도로 묶어 실행한 과정이었다. 속도가 아니라 합의가 먼저였고, 돈이 아니라 신뢰가 먼저였다.


사람은 공간에 정서적으로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거주'한다. 단순히 잠을 자고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알고 동네를 걷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모리빌딩이 34년을 투자한 것은 바로 이 뿌리내림의 조건이었다.

한국의 재개발이 속도전으로 달리는 동안, 모리빌딩은 관계를 엮고 있었다.


5. 상가를 파는 나라, 도시를 채우는 나라


한국의 복합단지는 종종 담장으로 둘러싼 단절된 섬이 된다. 상업공간은 필지별로 쪼개져 분양되고, 분양이 끝나면 MD(상품구성)를 통제할 주체가 사라진다. 동선은 끊기고, 상권은 서로 경쟁만 하다가 힘이 빠진다.


힐스 시리즈는 경계를 허물어 연결한다. 롯폰기 힐스는 문화로 사람을 끌고, 토라노몬 힐스는 교통과 업무로 돈을 끌어오고, 아자부다이 힐스는 녹지와 웰니스로 거주 품질을 올린다. 각 거점이 컨셉과 타깃을 달리하면서, 점이 아니라 하나의 면—도시 권역을 완성한다.


차이는 한 문장이다. 상가는 분양해 회수하는 대상이 아니라, 도시의 콘텐츠를 채우는 장치라는 철학의 차이다.

"사람은 콘크리트를 사지 않는다. 머물 이유를 산다."

이 철학의 차이가 도시의 미래를 가른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6. 빈 건물이 묻는 질문


모리빌딩의 힐스 시리즈가 37년에 걸쳐 증명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건물을 올리는 속도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시간이 도시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명제다. 시간의 축적, 문화의 삽입, 운영의 지속—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도시는 노후화하지 않고 익어간다.


한국 재개발의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완공 이후를 설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짓고 떠나는 모델이 반복되는 한, 도시는 30년마다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하고, 그때마다 커뮤니티는 해체된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개발의 목적이 '파는 것'에서 '가꾸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분양 차익이 아니라 운영 수익이 사업의 축이 되어야 하고, 속도가 아니라 합의가 개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돌아온다. 당신이 짓고 있는 도시는, 완공 이후에도 사람을 붙들 이유가 있는가.




※참고문헌

Heidegger, M. (1951). Bauen Wohnen Denken. In Vorträge und Aufsätze. Pfullingen: Neske.

모리빌딩 주식회사. (2023). 아자부다이 힐스 프로젝트 개요. 도쿄: 모리빌딩.

정영효. (2024). 완공까지 34년 걸렸다…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한국경제.

국토교통부. (2025). 2025년 11월 주택 통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2025). 건설공사비지수 동향 보고서. 일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김선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0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5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높이 날수록 그림자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