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판단을 대신할 때, 의사결정 권력은 누구에게 이동하는가?
1455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판 인쇄기로 완성한 42행 성경이 세상에 나왔다. 초판은 180부였다. 당시 성경 필사본 한 질의 가격은 집 10채 값이었고, 오직 수도원과 교회만이 성경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인쇄기는 제작 속도를 필사 대비 15배 빠르게 만들었고, 가격을 급격히 낮췄다. 교회가 수백 년간 독점하던 텍스트가 대량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 62년 뒤인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인쇄술의 힘으로 불과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한 신학자였지만, 인쇄기가 그를 유럽 종교 개혁의 불씨로 만들었다. 흔들린 것은 인쇄기가 아니라, 수백 년 된 해석 독점이었다.
2025년 기준,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약 2,942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기업의 88%가 최소 하나 이상의 업무 기능에 AI를 정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AI는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의료 영상을 판독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한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고액 전문가만이 수행하던 판단이 AI를 통해 생성된다.
AI는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의료 영상을 판독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한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고액 전문가만이 수행하던 판단이 AI를 통해 생성된다.
인쇄기가 성경의 복제 비용을 낮추자 교회의 해석 독점이 무너졌다. AI가 인지 노동의 비용을 낮출 때, 무엇의 독점이 바뀌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AI 혁명이 실제로 어떤 구조를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산업혁명은 증기와 전기를 동력으로 삼아 인간의 근육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직조기가 섬유를 짜고, 증기기관이 공장과 광산을 돌렸다. 생산성은 폭발했고, 도시는 팽창했으며, 노동 계급이 형성됐다. 변화는 생산 방식에서 시작해 도시 구조, 계급, 시장, 국가의 형태 전반으로 확산됐다.
AI 혁명은 다른 층위에서 시작한다. 동력원은 데이터와 컴퓨팅 연산이다. AI는 인간이 남긴 텍스트, 이미지, 소비 기록, 의료 데이터, 금융 거래 내역을 학습해 패턴을 찾고, 그 패턴으로 예측·생성·분류를 수행한다. 팔의 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과정에 개입한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5년 기준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약 2,942억 달러이며, 2026년에는 약 3,759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이 예상된다(Fortune Business Insights). 맥킨지가 2025년 6~7월 전 세계 105개국 1,9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기업의 88%가 최소 하나 이상의 비즈니스 기능에 AI를 정기적으로 활용한다고 응답했다. 2023년의 33%에서 불과 2년 만에 88%로 급등한 수치다. 도입 영역은 고객 서비스, 코딩, 재무 분석, 의료 판독, 법률 문서 검토까지 확장됐다.
도입 영역은 고객 서비스, 코딩, 재무 분석, 의료 판독, 법률 문서 검토까지 확장됐다.
핵심은 속도보다 층위에 있다. 공장 자동화는 반복 생산직의 손을 대신했다. AI 자동화는 변호사의 초안을, 회계사의 분류를, 의사의 1차 진단을 보조하거나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체 대상이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반복 노동에서 인지 노동으로 이동했다.
산업혁명이 생산의 방식을 바꿨다면, AI 혁명은 의사결정의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방식이 바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가 더 달라진다—의사결정 권력의 소재지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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