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빵과 서커스가 우리 시대에 다시 쓰이고 있는가?
유베날리스(Juvenal)는 서기 1~2세기 무렵, 로마 시민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한때 제국의 주권자였던 시민이 이제 두 가지밖에 원하지 않는다고 — 식량과 구경거리. 그의 풍자시 『사티라』 제10편에 등장하는 라틴어 구절 "panem et circenses"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다. 정치 참여와 시민의 자율성이 사라진 자리에 먹을 것과 오락이 들어선 사회를 진단하는 문장이었다. 그가 지적한 것은 게으른 시민이 아니었다. 주권을 넘겨주고도 불만이 없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2024년 이후, 세계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AI 기반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있다. 콘텐츠 생산, 고객 상담, 법률 초안 작성, 기초 코딩 — AI가 처리하는 영역이 확장되면서, 이 작업들을 수행하던 중간 숙련 노동자들이 조용히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기술이 직무를 대체하는 속도가 이전 어떤 산업혁명 국면과도 다른 기울기를 보이고 있다. 그 기울기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아직 질문 중이다.
유베날리스가 로마에서 목격한 장면과 오늘의 이 흐름 사이에서,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그 질서를 따라가 볼 때가 됐다.
로마 공화정 후기, 대규모 정복 전쟁은 두 가지를 동시에 불러왔다. 전리품과 노예였다.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에 이르는 전성기 로마의 노예 인구는 전체 인구의 최대 35%까지 차지했다는 추산이 있으며(Keith Hopkins, Conquerors and Slaves, 1978),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만 따져도 2~3백만 명에 달했다.
노예는 임금이 없었지만 '무료'는 아니었다. 구매비, 감시비, 식량 제공, 폭동 관리가 실제 비용으로 붙었다. 그럼에도 대규모 농업, 광업, 가사노동에서 자유 노동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졌고, 이 비용 구조가 로마의 노동 지형을 서서히 재편했다.
결과는 토지 집중이었다. 소규모 자영농이 운영하던 농지들이 대토지 소유자에게 흡수되며 라티푼디아(latifundia, 대농장)가 확산되었다.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이 대농장 체계는 소농 기반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 로마 공화정에서 토지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자영농은 군역의 자격 단위였고, 군역은 시민권의 실질적 근거였다. 땅을 잃은 소농은 생계와 함께 정치적 발언권도 함께 잃어갔다.
기원전 133년, 호민관으로 선출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이 균열을 봉합하려 했다. 공유지 보유 상한을 설정하고 초과분을 소농에게 재분배하는 토지법(Lex Sempronia Agraria)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해 원로원 세력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 이후 로마는 100년을 더 버텼지만, 방향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로마는 이 불균형을 도시 정책으로 관리했다. 농촌에서 밀려나 도시로 유입된 빈민층에게 곡물을 배급하는 체계, 아노나(annona)가 확대되었고, 황제와 귀족들의 후원 아래 대규모 공개 경기(ludi)가 제공되었다. 아노나는 현금 소득의 대체가 아닌 현물(곡물→빵) 중심의 배급이었으며, 도시 치안과 정치 안정을 위한 관리된 복지 장치였다.
지금 AI가 만드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같은 질문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AI가 만드는 변화의 본질은 흔히 '임금이 0인 노동력의 등장'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더 정밀한 표현이 있다. 특정 직무에서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하는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는 현상이다. 법률 문서를 초안화하거나 고객 문의에 응답하거나 마케팅 카피를 생산하는 비용이 인간 노동의 수십 분의 일 수준으로 내려가는 순간, 그 작업을 해온 사람의 협상력은 바닥을 친다. 임금이 서서히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무 자체가 가격 경쟁의 영역에서 퇴장한다.
로마 노예 경제의 유사성이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노예는 로마 노동시장 전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 가격 하한선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소농이 경쟁에서 밀린 것은 기술의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 비용 구조의 비대칭 때문이었다. AI가 중간 숙련 직무에서 만드는 조건이 구조적으로 같다. 경쟁 상대가 인간 동료에서 한계비용이 0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바뀌는 순간, 노동의 가치 측정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더 핵심적인 질문은 이 이익이 어디로 가느냐다. 로마에서 정복의 이익은 귀족과 대토지 소유자에게 집중되었다. 노예 노동이 만드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가져간 것은 노예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제기했던 질문은 정확히 이것이었다 — 전쟁이 만든 부가 왜 소수에게만 돌아가는가. 그 질문은 살해로 봉합되었고, 공화정은 이후 한 세기를 내전으로 소비했다.
AI 시대에도 동일한 구조가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모델,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를 소유한 소수 기업이 초과이윤을 독점하는 방향으로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하는 기술에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유한 사람이다. 이 비대칭은 라티푼디아 소유자가 소농의 노동을 대체한 방식과 구조적으로 같다.
로마가 이 구조에 내놓은 답이 불편한 시나리오를 그려준다. 도시 빈민에게 곡물을, 그들에게 스펙터클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면 기본소득과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다. 이것이 진정한 재분배가 아니라 사회 안정 장치로 기능하게 될 때, 유베날리스의 풍자는 2세기 로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된다.
오늘날 AI 초과이윤세, 데이터 주권, 공공 AI 인프라 논의는 2,000년 전 그라쿠스 형제가 던졌던 질문을 현대 언어로 반복하고 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구조적 질문은 동일하다 — 기술의 이익을 누가 가져가도록 설계할 것인가.
기술은 배경이다. 소유 구조가 전경이다.
그 설계의 방향이 결정되는 지금이 공화정의 균열이 시작된 기원전 133년과 닮아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역사적 비교가 가지는 진짜 무게다.
중간 숙련 노동자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경험은 단순한 수입의 손실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삶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감각, 즉 통제 가능성의 상실이다.
로마의 소농이 라티푼디아에 흡수되었을 때, 그들이 잃은 것은 경작지만이 아니었다. 땅이 없으면 병사가 될 수 없었고, 병사가 될 수 없으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존재감도 얇아졌다. 생계 수단, 사회적 위치, 정치적 발언권이 함께 사라지는 경험이었다. 도시로 밀려온 그들은 아노나의 수혜자가 됨으로써 생존을 유지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서는 물러나 있었다.
오늘 AI로 직무를 잃어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층위의 감각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쌓아온 숙련이 더 이상 시장에서 값을 받지 못한다는 감각은 경제적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이 쓸모없어진다는 자기 인식의 위기다. 이 감각이 집단화될 때 정치는 급격히 재편된다.
그라쿠스 개혁을 지지했던 민중이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세기를 정치 폭력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처럼, 불안의 정치화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불안을 품은 다수가 강력한 해결사를 찾기 시작할 때, 공화정의 제도적 균형은 빠르게 무너진다.
기본소득과 엔터테인먼트로 이 불안을 흡수할 수 있다는 발상이 위험한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보이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안의 봉합과 불안의 해소는 전혀 다른 일이다. 로마의 봉합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었는지, 역사가 이미 답을 보여주고 있다.
AI 시대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기술적 특이점, 직업의 소멸, 규제 설계에 집중된다. 그러나 로마의 경험이 가리키는 것은 다른 지점이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드는 이익을 누가 가져가도록 구조가 설계되어 있는가였다.
로마 공화정은 정복 전쟁이 만든 부를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구조를 교정하지 못했다. 그라쿠스 형제는 시도했지만 살해되었다. 공화정은 이후 한 세기를 버텼지만 결국 소수 권력의 경쟁, 즉 내전으로 끝났다. 아노나와 대규모 경기는 붕괴의 속도를 늦췄지만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AI 시대의 정책 설계가 직면한 핵심 질문이 여기에 있다.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하는 기술의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AI 초과이윤세, 데이터 주권, 공공 AI 인프라 논의는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안들이다. 기본소득 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진정한 재분배인지 현대판 아노나인지는 재원이 어디서 오는지, 그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가 결정한다.
기술 중립은 없다. AI를 누가 소유하고 그 이익이 어디로 흐르는가, 그 설계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선택이다.
이 판단 없이 AI 시대를 논하는 것은, 로마의 노예 경제를 두고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로마는 노예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 정복이 만든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가 공화정의 정치적 토대를 무너뜨렸고, 도시 대중을 곡물과 구경거리로 달래는 방식이 그 균열을 오랫동안 덮었다. 결국 공화정의 시민들은 주권을 잃었다. 아노나 수혜자가 되는 순간, 그들은 결정하는 자가 아니라 관리받는 자가 되어갔다.
AI 시대에 이것이 반복될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기본소득과 무료 서비스가 진정한 재분배의 결과인지, 현대판 아노나인지는 재원이 어디서 오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AI 초과이윤에서 오는 분배와 일반 세금에서 오는 분배는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든다.
결국 이 문제는 AI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 구조를 결정하는 정치의 문제다. 해법은 기술을 늦추는 것도, 빵을 더 많이 나누는 것도 아니다. 빵을 누가 굽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어떻게 분배되어 있는가가 핵심이다.
유베날리스가 조롱한 로마 시민들은 불합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어진 구조 안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들 — 편리함, 무료 서비스, AI의 혜택 — 이 언젠가 주권을 교환한 대가로 읽히지 않으려면,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빵을 받는 자가 아니라, 빵을 결정하는 자가 되고 있는가."
※참고문헌
Juvenal (Decimus Junius Juvenalis). (c. 100–127 CE). Satira X. Roma. [유베날리스, 『풍자시』 제10편]
Hopkins, K. (1978). Conquerors and Slav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ncyclopedia Britannica. (2024). Latifundium. Chicago: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Wikipedia contributors. (2024). Annona. I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World Economic Forum. (2023).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3. Geneva: W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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