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나를 버티게 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 등수가 잘 나왔던 날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담담했다.
전교생 수가 적고 공부를 잘하는 학교도 아니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그래, 이 정도는 당연한 거겠지’ 하며 받아들였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 감정을 눌러두었다.
그때 언니가 엄마에게 따지듯 말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칭찬을 해줘야지.
남동생은 별것 아닌 일에도 칭찬하면서
왜 여동생에게는 이렇게 인색해?”
그 말을 듣는 순간
괜찮은 줄 알았던 마음이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러움이 한꺼번에 올라와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친구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정을 원했던 것 같다.
잘해냈다는 말, 괜찮다는 말, 내 편이라는 신호를.
언니와 친구가 있었기에
그 시절의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늘 괜찮은 척하던 내가 처음으로
내 감정을 알아차린 날이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괜찮지 않았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