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수업은 인성교육이었다. 그 자리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는 단과대마다 상담실과 전문 상담사를 두고 있으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우울감과 자괴감에 빠져 힘들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어쩌면 명확하다. 평생 1등만 해오고 칭찬만 받아온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누군가는 1등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300등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감정의 추락, 실패의 무게가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서열화된 경쟁 구조 속에 있다. 그동안 늘 승리만 해온 학생들이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 혹은 멈출 수 있을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는 누구나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등이 중학교 1등을 보장하지 않듯, 고등학교 1등이 대학에서 또다시 1등을 지키기도 어렵다. 설령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세계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순위가 매겨진다.
가장 높이 오른 이들이 실패를 경험할 때, 그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낮은 자리에서부터 실패를 지나치게 겪으며 애초에 오르기를 포기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상까지 올랐던 경험이 있다면 다시 힘을 내어 도전하거나 자신이 만족할 위치에서 타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길을 알려주어야 한다. 성취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높은 목표로 동기를 부여하되, 언젠가는 멈추거나 쉬어가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맞닥뜨릴 현실에서 더 잘 넘어지게 하기 위한 준비다.
물론, 아스팔트에 부딪히듯 혹독한 실패를 통해 아이들은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그런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넘어질 때, 최소한 바닥에 매트를 깔아주는 것. 다시 일어설 힘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결국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끝까지 달리는 법’만이 아니라 ‘멈추고 쉬는 법’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