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원래 말의 영역이었다.
공동의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대안과 선택지를 제시하며, 더 나은 질서를 만드는 기술.
그런데 요즘의 정치는 좀 이상하다.
공약보다 밈이 중요하고, 토론보다 리액션이 더 많이 회자된다.
누가 무슨 정책을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가 유튜브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다 안다.
정치는 점점 콘텐츠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 흐름은 점점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다.
카메라 앞에서 연설하는 정치인, 해시태그를 달고 트렌드에 편승하는 후보들, 그리고 결국 영상의 조회수로 ‘정치력’을 평가하는 시대.
문제는 이 콘텐츠가 실질적인 정책과 거버넌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가 대중과 소통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정치’가 ‘실질적인 정치’를 대체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유권자는 점점 더 연예인 소비하듯 정치인을 평가하고,
정치인은 자신의 입법성과보다 댓글 수를 먼저 챙긴다.
콘텐츠가 된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책이 논의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졌다.
지금은 말이 먼저고, 그 말은 영상이 되어 떠돌며, 그 흔적은 이내 잊힌다.
정책은 업로드되지 않는다.
책임은 삭제된다.
‘좋아요’는 남지만, 입법은 남지 않는다.
그리고 이 콘텐츠화된 정치는 ‘정치혐오’와 절묘하게 결합된다.
쇼처럼 펼쳐지는 말장난과 이미지 전쟁은 결국 정치에 대한 환멸을 낳는다.
유권자는 ‘다 똑같다’고 말하며 투표를 포기하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셀럽 정치인이 메운다.
정치는 콘텐츠가 아니어야 한다.
정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치인의 편집 기술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 박수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