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쓰고 인랑 바라보기

0. 도덕적 모호함의 캐릭터에 끌리는 이유

by 드따적따일따

안녕하세요.
드따적따일따입니다.


이번 글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에 대한 분석 콘텐츠 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은 입체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에게 큰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등장인물 간의 선악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아,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감상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상에 있어 인지적으로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영화이기에, 대중적 흥행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제4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는 등 평단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컬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 강동원, 한효주 주연의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인랑> 속 캐릭터 분석이나 영화에 사용된 상징적 장치를 다루기에 앞서, 이 영화처럼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내러티브의 특징은 무엇인지, 또 왜 관객들이 이러한 캐릭터에 끌리는지를 먼저 알아보고자 합니다.




후세.jpg 후세가 가지고 있는 보통의 일반인 외모, 단출한 옷차림, 무표정한 얼굴은 바쁜 현대사회 속 시민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1. 현실적인 캐릭터

현실의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모순을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완벽한 영웅보다 실수하고 흔들리는 불완전한 안티히어로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며, 관객은 그런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속 트래비스는 불안정한 심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합니다. 또한, <인랑>은 전후 일본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가상으로 그려내며, 이야기를 단순히 후세의 영웅담으로 구성하지 않고, 조직 간의 권력 투쟁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사실적이고 잔인하게 묘사함으로써 관객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이끌어냅니다.

때문에,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이 가는 히어로 영화에서 우리가 얻는 즐거움과,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에서 얻는 즐거움은 다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후자의 영화 속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관객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모습을 마주하고 반성하며, 밝은 희망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2. 대리 만족

<인랑>을 비롯한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입니다. 도덕적 모호성이란 명확한 선과 악 구조를 가진 전통적인 영웅 서사와는 반대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심리학자 Shafer와 Raney는 이러한 구조를 ‘반영웅적 내러티브(Anti-heroic Narrative)’라고 명명했으며, 이는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비도덕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관객에게 매력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즈니+ 오리지널 <비질란테>의 주인공 지용은 폭력으로 범죄자를 처단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그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인랑>에서도 후세는 여성이나 약자를 해치지 않으려는 도덕적인 면을 보이면서도, 적으로 판단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처리하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모호성은 ‘도덕적 해방(Moral Disengage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Albert Bandura는 이를 자신이 호감을 가진 인물의 비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전략이라 설명합니다. 관객은 주인공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한 '단서'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인물과 동일시하며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인랑>과 같은 영화들이 도덕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관객이 이러한 인물들과의 동일시 과정 속에서 인지적 해방과 대리 만족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3. 입체감 있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

도덕적으로 단순한 캐릭터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정의로운 선택만 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가 됩니다.

<인랑>의 후세 또한 그러한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죽은 소녀의 환영을 보는 장면,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클로즈업, 도심을 방황하는 장면 등을 통해 후세는 끊임없이 인간성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연출은 그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이자 늑대 같은 존재로서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후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의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정리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는 마치 거울 속의 우리처럼 현실적이고 입체적입니다. 이러한 캐릭터에 몰입한 관객은, 캐릭터가 행하는 부도덕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단순한 설정이 아닌,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과 내러티브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과, 이를 리메이크한 한국 실사 영화 <인랑>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글부터는 <인랑> 속 캐릭터들의 행동과 관계, 그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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