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당신의 마음도 저에게 주세요."

by 해린C

어쩌면 그 사람의 목소리로 한 번쯤은 듣고 싶었을 자신만의 것, 그 고유한 이름의 호성이 남긴 여운은 퍽 진했다. 에드윈의 입가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떨려 왔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에젤드는 기다림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왜 한참 후에야 당신 앞에 나타났는지를 말이에요. 실은 저도 당신과 같은 고민, 같은 걱정을 하면서 긴 시간을 보냈어요. 왜 아니겠어요. 당신은 보통 용기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나, 마음만 앞서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당신을 더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들 때문에 당신 앞에 쉽게 나설 수가 없었어요. 내가 상처 받을까 봐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녀가 마음에 깊이 품은 진심을 고스란히 내어 보이자 에드윈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떨군 시선이 자신의 손등을 덮은 에젤드의 손에 닿았다.


“그런데 말이죠. 생각해 보니,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데 용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에젤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에드윈을 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그녀는 잠잠히 있었다. 그의 글썽이는 눈빛을 마주하고서야 그녀가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보세요. 당신은 불행 안에 살고 있지만 불행한 사람은 아니에요. 이렇게나 강인한 사람이죠. 당신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문제가 당신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이렇게나 이성적인 사람이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삶도 중히 여겨요. 이렇게나 사려 깊은 사람이죠.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데, 없던 용기도 생기지 않겠어요?”


에드윈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꼬옥, 힘이 들어갔다. 에젤드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더욱 결연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미래를 믿지는 않지만, 당신은 믿어요. 어떤 내일을 맞이하든 성실하게 살고 사랑할 당신의 진심을 믿어요. 당신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까 봐 겁나지 않아요. 아무 생각 없이 무모하게 하는 말이 아니에요. 뭐든 될 대로 되라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이제껏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 게 있던가요?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평생을 살아도 볼 일이 없었을 우리가 서로를 알고, 알아 가고,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에게는 이 감정이 너무나 소중해요. 지키고 싶어요. 당신의 삶에 있을 수많은 변수가 또 어떤 우연과 계기를 만들어 낼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해요. 마음은 준비하되, 미리 겁먹지는 말아요. 문제가 닥치면 해결책을 찾아요.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사는 방법을 찾아요. 그것이 당신이 살아 온 방식 아닌가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어느 사이에 에드윈의 미간에는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이마에는 퍼런 핏줄이 솟고, 아래로 처진 그의 눈가에는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그녀가 나타낸 믿음이, 그 확신의 밀도가 놀랍도록 촘촘하여 그의 몸속의 모든 기운을 벅차도록 끌어올리는 것이 분명했다. 에드윈은 어찌할 줄을 몰라 고개를 내두르며 그저 떠오르는 말들을 이것저것 뱉어 냈으나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당신이 나를……. 내가 어떻게…….”


숨을 들이쉬자 흑흑하는 소리가 버거운 호흡의 사이사이로 끼어들었다. 눈물이 가득 밴 그의 눈이 말하고 있는 것이 기쁨인 것을, 그것이 감격에 겨운 희열인 것을 알아차린 에젤드는 엷은 미소를 품었다. 힘들게 들이쉬었던 숨을 다시 후우 내쉬자,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 알면서도 꼭 확인하고 싶은 물음이 그의 입에서 울컥 튀어나왔다.


“꿈이 아니죠? 당신 마음을, 정말 내가 가졌어요?”


에젤드는 맑게 웃었다. 손가락으로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며시 닦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인지를 알지 못할 뿐, 그 언젠가를 시작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지나간 날은 하루도 없었어요.”


그렇게 말해 놓고 문득 서러워졌는지, 그녀가 샐쭉 토라져 말을 이었다.


“혼자 가슴앓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말도 못 하고……. 속이 다 곪아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고요.”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니 한스러워 에드윈을 탓하듯 바라보던 에젤드는 금세 또 애잔해졌다. 그녀는 에드윈의 젖은 뺨을 손으로 가만히 감쌌다. 그리고 절실히, 짙은 애정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혼자는 싫어요. 당신이 없어도 당신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할 수 있지만, 그런 건 다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좋아해요. 이렇게 보고, 듣고, 함께하고 싶어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당신과 나눌래요. 나의 생각도, 삶도, 전부 다요. 이젠 숨기지 않고 마음을 열게요. 에드윈. 당신의 마음도 저에게 주세요.”


에드윈은 자기 뺨을 감싼 에젤드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겨 또 한 번 꽉 움켜쥔 채로, 이제서야 조금 편안해진 웃음을 보이며, 그가 답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인 순간이라는 걸 알지만, 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서 당신의 손을 꼭 잡아요. 내 마음을 주고말고요. 내가 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사랑하는 내 마음을 줄 거예요.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의 손에 입 맞추고, 우리는 수많은 날들을 함께할 거예요. 당신이 허락해 준 당신의 삶 속에 기꺼이 들어갈게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평안의 날이 반드시 찾아와 당신이 나의 안에 온전히 평안하게 깃들여 주기를, 내가 당신에게 바다의 폭풍 같은 고난이 아니라 바다의 윤슬 같은 반짝임이 되기를 끝없이 바라며, 나는 당신을 아끼고 소중히 할 거예요.”


따스한 공기. 그 속으로 보드라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바람은 에드윈의 뺨을 스치고, 그의 눈물을 말렸다. 바람은 또 물결 위를 스치고, 바람에 밀린 새파란 물결들은 올랑촐랑 부딪쳤다. 그 바람은, 그 소리는, 향긋한 꽃내음과 하나가 되어 온 들판을 휘돌아 춤추며 천진하게 뛰놀고 흥겹게 웃어 댔다. 그대로가 마냥 다 좋았다. 세상을 채운 모든 것들이 마냥 기뻤다. 이것이 봄. 바로 봄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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