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보오자…….”
에젤드의 작은언니는 나비 모양 머리 장식을 들어 에젤드의 머리에 대어 보았다.
“이건 나비, 그리고 이건…… 잠자리.”
그녀는 이번엔 잠자리 모양의 장식을 들어 에젤드의 반대쪽 머리에 대어 보며 두 개의 장신구를 신중하게 살폈다. 그러더니 물었다.
“뭐가 나한테 어울릴까?”
에젤드는 지치고 피곤한 기색으로 답했다.
“나한테 대 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 언니한테 대 봐야 말을 해 주지.”
“에잇! 어떻게 이놈의 가게는 장신구를 팔면서 거울 하나 갖춰 놓지를 않았는지 몰라.”
작은언니는 심통을 툴툴 내면서 에젤드에게 대었던 두 개의 장식을 자신의 머리 양쪽에 대며 물었다.
“자, 이제 봐 봐. 어떤 게 더 잘 어울려?”
“잠자리. 잠자리가 잘 어울려.”
“아이, 뭐야. 나비가 훨씬 예쁘잖아.”
“그럼 나비로 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나비야? 잠자리야?”
“언니가 원하는 걸…….”
저자에서 물건을 고르는 재미에 푹 빠진 언니와는 달리 기운이 다한 듯 어깨가 축 처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과 성을 다해 대답해 주던 에젤드가 갑작스레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하자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 언니는 그녀의 팔을 툭툭 치며 원하는 답을 주기를 채근했다.
“그래서 뭐라고?”
무언가에 정신이 빠졌던 에젤드는 경황없는 눈빛으로 다시 언니의 머리 위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비…….”
그러다가 또다시,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그러다가 다시 봤던 곳을 또 보는 그녀가 답답한지 언니가 물었다.
“너 왜 그래?”
여전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며 에젤드가 대답했다.
“누가 날 부르지 않았어?”
언니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아니 누가 널 불러.”
“분명히 들었는데…….”
에젤드가 다시 한번 어렴풋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멀리서부터 걸어오던 한 사내가 두 사람에게 가까워져 오면서 자기 앞에 가는 여인을 소리쳐 부르는 것이었다.
“에블린!”
사내가 지나가자 에젤드는 입을 꾹 다물었고, 언니는 언짢은 듯 눈을 흘겼다. 애꿎은 사내의 뒷모습에 미련 가득한 시선을 던지고만 있는 에젤드를 향해 에젤드의 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퍽이나 널 불렀겠다. 어디 네 이름이랑 비슷한 데가 있기는 하디? 정신 좀 차려. 요즘 자꾸 딴소리하고 헛소리 듣고, 진짜 왜 그래? 너 어디 아파?”
언니의 면박에 에젤드는 망연히 시선을 내리깔고 아무 말이 없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또 참지를 못하고 언니가 한 마디를 더 하려던 순간, 에젤드가 신기루를 바라보는 듯 멍하고 아련한 눈빛을 하고 힘없이 답을 건넸다.
“그래. 맞아, 언니. 나는 지금 아파.”
그러고는 어깨에 둘러멨던 가방을 벗어 언니의 가슴에 덥석 안기고는 말했다.
“곡물상은 언니 혼자 갔다 와.”
다짜고짜 안긴 가방을 멀뚱히 끌어안고, 에젤드의 언니는 이미 돌아서서 몇 발짝을 옮긴 에젤드의 뒤에 대고 물었다.
“야! 어디 가?”
넋이 빠진 사람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옹골차게 갖추고, 에젤드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아프니까, 의원을 찾아가야지. 거기에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에젤드의 언니는 알 수 없는 말만을 남기고 벌써 저만치 총총 사라져 가는 에젤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쑥 내려온 턱을 닫지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아픈데…… 뭐? 뭘 기다려?”
새파란 물결은 끝없이 흐르고, 연녹색 이파리들은 산뜻한 꽃바람에 쉼 없이 팔랑거렸다.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보드라웠다. 소리는 평화롭고, 내음은 싱그러웠다. 그것은 봄. 봄이었다.
“봄이네요.”
이깟 봄 따위, 하는 식으로 바람이 좋건 말건, 햇살이 눈부시건 말건, 그저 잔뜩 웅크려서는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던 에드윈의 고개가 반짝 치들렸다. 그는 귓가에 닿은 목소리를 의심했다. 의심하지 않고서야 그이가 말을 걸었는데도 고개가 그렇게까지 느릿느릿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에젤드…….”
가슴 깊숙이에 박아 두었던 그 이름을 다시 입 밖으로 꺼낼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걸까. 이때에, 이곳에서 그녀를 다시 볼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의 눈동자는 찰싹이는 호수 물보다도 더 심하게 넘실거렸다.
에젤드는 가만히 그의 옆으로 가 햇볕이 달구어 놓은 따끈한 바윗돌 위에 올라앉았다. 그녀가 다가오자 웅크렸던 에드윈의 몸은 스르르 풀려, 두 다리가 바윗돌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어안이 막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에드윈을 보고, 에젤드는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이 뜻밖의 해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에드윈은 사실 울렁이는 가슴을 다독이기 위해 몹시도 애를 쓰는 중이었다.
“여긴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숨 쉬듯 뱉어낸 뒤로는 체한 사람처럼 명치만 쓸고 있던 에드윈이 겨우 끄집어 낸 말이었다.
“성에 갔더니, 요즘 왕자님께서 혼자 보내시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고 해서요. 혼자 계시다면 이곳에 오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답을 마친 에젤드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지난가을에 보았던 자작나무의 황금빛 잎사귀는 옅은 초록으로 변해 있었고, 연청이었던 하늘과 호수는 이제는 눈이 마비될 것 같이 아주 선명한 파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첫 마주침에 황홀경에 빠져 경탄을 자아내게 했던 그곳이 지금은 그녀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을까. 파란 호수 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삽시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파란 물의 빛깔에 빨려 드는 에젤드의 정신보다도 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신을 아직도 추스르지 못한 에드윈은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를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겉도는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한참 만에 다시 에드윈에게 말을 건넨 에젤드의 눈빛은 퍽 진중하고 신실했다. 진지한 그녀의 음성을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에드윈의 눈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녀는 호수를 향해 있던 눈을 돌리고 에드윈을 보며 또렷하게 물었다.
“저를 너무 많이 사랑하시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에드윈의 눈빛이 격랑에 휩쓸리듯 출렁, 극렬하게 출렁였다.
“제가 위험해지나요? 매일 울기만 하다가, 결국엔 버림받을까요?”
에드윈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실상 대답을 못한다기보다는 질문을 차근차근히 되씹는 것만 해도 버거울 것이었다.
“전하께서 장담하실 수 있는 결말이 그중에 있습니까?”
딱하게도, 한꺼번에 몰려든 에젤드의 질문에 에드윈의 눈이 몹시 곤란해졌다. 그의 눈빛은 당혹스러웠고, 근심스럽기도 했으며, 얼핏 호기심도 비친 데다가, 무엇보다도, 그녀를 매우 사랑했다.
그는 넘칠 듯 꽉 채워 들어찬 마음을 내버리려 재빨리 그녀를 외면하고는 참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에젤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저는 그 사랑 받고 싶습니다.”
주저하지 않은 그녀는 지금껏 용케 참아 왔던 마음을 토하듯 왈칵 쏟아 냈다. 그 덕에 묵직하던 에드윈의 체기까지 내려간 것인가, 그의 어깨가 쑥 내려앉았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인 것처럼, 아님 반대로 또 다른 감정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그에게서 후련한 듯 벅찬 숨이 끝내 버텨 내지 못하고 밀려 나왔다.
에젤드는 이제 더 참아 낼 것도 없는 감정들을 뱉어 냈다.
“제가 원한다면 뭐든 기꺼이 하게 해 주셨잖아요. 무엇을 하든 먼저 저에게 물어보셨잖아요.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내가 제일 원하는 건 그건데, 그것만 예외인 건 불공평해요.”
에드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타오를 것 같은 마음을 꾹 눌러 잠재웠다. 그러다 전부 다 들켜 버릴까,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렇게나 새어 나오는 자신의 숨결을 막무가내로 붙잡아 그것에 간곡히 애원한 뒤 받아 갖춘 억지스러운 냉정함으로, 여전히 그녀에게서 눈을 돌린 채로 말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달라요. 테두리 밖에서 보는 것과 이 안으로 들어오는 건 달라요.”
“안으로 들어가야 서로를 안아 주죠.”
어설픈 회유는 소용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에드윈은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보았다. 별다른 도리가 없는 그는 그저 타이르듯 그녀를 불렀다.
“에젤드.”
그것은 간청이었다. 내가 겪는 슬픔을 당신과 나누지 않게 해 달라고, 단 한 방울의 궂은 빗방울도 당신의 머리 위로는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비는 간청인 것이었다.
그러나 에젤드의 굳센 눈빛을 본 에드윈은 호소하기를 이내 단념했다. 자신 역시 눈빛을 굳건히 하면 될 것이라 믿는 모양으로, 그는 그녀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최악의 경우, 나는 신분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될 거예요.”
에젤드는 담담히 답했다.
“신분을 잃으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거죠. 아무것도 아닌 것은 곧 모든 것을 가진 것과 같을 거예요.”
“깊은 상처로 끝날 수도 있어요.”
“깊어진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죠.”
“가족을 설득하기 어려울 거예요.”
“저는 전하의 곁에 있을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확고할 수 있어요?”
“정말 제 마음을 모르시겠어요?”
마치 말다툼이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했던 두 사람의 대화가 거기서 뚝 끊겼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극에 달한 두 사람은 끝내 입을 닫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달콤한 앞날을 그려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에드윈에게는 참으로 잔인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비극이 사랑하는 이의 평범한 일상과 잇닿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열쇠는 자신의 손에 있다고 여전히 믿는 그는 마지막으로, 어쩌면 정녕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무척이나 정답고 자상하게,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에젤드.”
아직 마음의 섭섭함이 풀리지 않았는지, 에젤드는 나비눈을 뜰 뿐이었다. 유감이 가득 찬 그녀의 눈은 그를 차갑게 지나쳐 애먼 호수 물이 괴롭도록 그것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를 달래려 에드윈은 더욱 낫낫한 목소리로, 아직 다 풀어 놓지 못한 그간의 진심을 모두 담아 말했다.
“나는 그래요. 다치면 아파하고, 아프면 약 바르고, 약 바르면 낫고, 그리고 하루를 살고. 그렇게만 살았어요.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내일 볼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예요. 내일을 기다린다는 게 너무 힘이 드는데, 그런데 그게 또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에젤드. 당신이 나의 내일이 되면 안 돼요. 내가 꿈꾸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내 마음이 뭔지 알죠?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
그의 목소리와 진심이 에젤드의 마음을 봄기운만큼이나 온화하게 다독인 모양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껏 힘이 들어갔던 에젤드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다만 호수를 향한 눈길만은 그대로, 그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흐르는 물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거겠지, 아마도 이젠 설득이 된 거겠지, 하는 마음이었는지 에드윈은 예측하는 결론을 미리 받아들이듯 씁쓸한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눈을 돌려 다시 에드윈을 바라본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나긋한 한 마디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랜웰 씨.”
그는 깜짝 놀라 자신을 부른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한낮의 해처럼 뜨거웠다.
커다래진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어쩐지 약간은 긴장한 듯한 낯빛으로, 에젤드는 조금씩 입을 벌려 큰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하나하나의 음절이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밀려 나왔다.
“에드윈.”
떨리는 음성에는 들뜬 숨결이 감돌고 있었다. 어쩌면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싶었을 그 이름을 막상 부르고 나서는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얼굴의 살갗이 송송 돋아 올랐다.
한껏 숨이 달뜬 에젤드와는 다르게 에드윈은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그의 두 눈동자는 단단히 굳은 조각상의 눈처럼 움직임을 잃었다.
온몸이 얼어 버린 그를 온기로 녹여 주려는 듯, 에젤드는 가만히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차분히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젠 제 얘기를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