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빈 도자기를 앞에 두고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는 에젤드를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그저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실은 그의 손도 멈춰 있었다. 물레를 돌리지도, 소성을 마친 도자기를 정리하지도, 유약을 바르지도 유약을 말리지도 않았다. 그저 키가 높은 작업대 앞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긴 채 쓰라린 눈으로 에젤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아……. 그가 또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세기도 힘들었다. 도자기만 바라보며 손톱을 깨물던 에젤드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보고는 걱정스럽게 그를 불렀다.
“전하.”
그녀의 목소리에 에드윈은 말없이 턱을 악물었다.
에젤드가 물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아까부터 한숨만 쉬시고.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에드윈의 눈이 조금씩 젖어 들었다. 그는 대답 대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나뭇가지에 앙증맞게 돋아나기 시작한 새순들을 보며 그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힘겹게 뗐다.
“겨울이 끝나 가네요. 곧 봄이 오겠어요.”
그의 말에 에젤드의 시선도 자연히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귀에 에드윈의 침잠한 음성이 이내 닿았다.
“그때까지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겠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 당신을 보내려는 마음이 아주 사라져 버릴 테니까.”
에젤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곳으로 가시나요?”
에젤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서 있는 작업대 앞으로 다가왔다. 몹시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에젤드를 차마 마주 보지도 못하고, 에드윈은 파르르 떨리는 또 다른 한숨을 깊게 내쉰 후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그의 두 눈 위로 괴로움이 짙게 번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수심에 잠긴 채 빨라지는 호흡을 가누는 에젤드의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는 동요하지 않으려는 듯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나는 당신에게 무례하고 불친절한 말을 할 거예요. 그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니 들어 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에젤드. 당신도 알죠.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그리 능숙하지 않아요. 나는 그저 나약한 존재일 뿐이에요. 특히나 당신 앞에서는 더더욱.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다 잊게 되는 것 같아요.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는 나인데, 당신은 점점 더 어렵기만 해요. 당신 앞에선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하고픈 말도 잘 나오지가 않아요. 사실 그동안엔 내가 대체 당신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잘 알지도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당신에게 건넸던 나의 말들에는 그 뒤에 덧붙이지 못한 말들이 수두룩해요. 고르고 골라 의미를 덜어 낸 말들만이 당신 곁을 맴돌았어요.”
준비도 없이 후드득 쏟아지는 그의 말들은 에젤드가 견뎌 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결국엔 이해하고 말 강렬한 느낌의 그의 언어를 혼란에 휩싸인 머릿속에 빠르게 담아 내려 무진 애를 쓰며 찡그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줄곧 다른 곳만 보던 에드윈은 스스로 자초한 고통을 감내하기로 작정한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뭉글해진 눈으로 에젤드를 바로 보고, 하지 못했다던 그때의 말들을 늦게나마 덧붙였다.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음이 축복이라는 말에는, 당신이 바로 나의 축복이라는 말이 빠져 있었고, 당신이 있는 이곳 아이니스가 좋다는 말에는,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으니 평생토록 당신 곁에 살고 싶다는 말이 빠져 있었어요. 오전이든 오후든 언제든 괜찮으니까 와도 된다고 한 건, 보고 싶다고…… 사실 나는 매일 당신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거였어요.”
에젤드는 그새 가득히 커진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믿기 어려운 광경을 마주한 사람처럼 에드윈을 빤히 쳐다보았다.
에드윈의 목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더 잠겨 갔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잘 참아 왔을지 모르지만,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말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건 이제 시간문제예요. 그러니 더 늦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오늘은, 할 수 있는 만큼 뒤로 미루어 두고만 싶은 그 시간을 당겨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끊어 내지 않으면…….”
에드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을 이으려다 또다시 꽉, 입술을 깨물고 숨을 골랐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숨을 몇 번이나 몰아쉬고 나서, 그는 물기 어린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나는 당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요.”
에젤드의 눈에도 핑 하고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호흡은 점차 더 가빠졌다. 그러나 눈도 깜빡이지 못하는 그녀의 귓가에는 마음 가눌 틈도 없이 메마른 말들만이 쏟아져 들었다.
“당신과 함께 봄을 지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늦어요. 마음이 깊어질수록 끝은 더 모질어질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지금보다도 더 무례하고 불친절한 사람이 되고 말겠죠. 그럴 수는 없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그럴 수는 없어요.”
에드윈의 눈빛이 몹시도 아팠다. 그 아픔이 에젤드에게 오롯이 스며들어 그녀를 울먹이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가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이해하고 있는 그녀에게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절절하고 덧없는 그의 고백은 경황이 없었고, 심장을 고동치게 했다가, 결국에는 절망에 빠뜨리는 가혹의 단계를 밟고 있었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을 그 말들을 한꺼번에 활처럼 쏘아 버린 에드윈이 그녀에게 미칠 그 가혹함을 과연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에드윈은 두 손을 모아 쥐었다. 마치 용서를 구하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고개를 저으며 쏟아 내는 그의 목소리가 눈물겨웠다. 그것은 마지막이 될 당부였다.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 멋대로 이곳에 불러 놓고 또 내 멋대로 보내는 건 정말 못할 짓인 거 알아요. 하지만 에젤드, 바로 지금이에요. 그때 못 했던 거 지금 해요. 나에게서 도망치는 거,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있어요. 행여 아쉬움이 남더라도, 내가 딱해 보이더라도 미련 두지 말고 이곳을 떠나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요. 부디 일말의 희망이라도 나에게 남기지 말아 줘요. 당신이 그러면,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어요. 아니, 놓지 않을 거예요.”
에드윈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는 힘없이 떨어져 있는 에젤드의 손을 가만히 잡아 올렸다. 딱딱한 굳은살과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작별 인사를 건네듯 그녀의 눈을 한 번 보고, 에드윈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붉어진 입술이 핏기 잃은 손등에 조용히 닿았다. 그는 더 움직이지도 못했다. 차디찬 손등에 맞춘 그의 뜨거운 입술은 그대로 한참을 멈추어 있었다. 들썩이는 어깨를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하던 그가 마침내 울음 섞인 숨을 참아 내고 얼굴을 들었을 때, 에젤드는 그만 흑, 하고 서럽게 밀려 나오는 숨을 터뜨렸다. 그토록 비통한 그의 눈빛을, 그만큼이나 젖어 든 그의 눈가를 본 적이 있던가. 불현듯 터져 나온 에젤드의 설움이 가슴을 찌르자 에드윈은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에젤드의 손등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닦아 주고 나서, 그는 그 손을 느리게 내려놓았다. 이제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얼굴에 여하한 기색조차 남기지를 않고, 에젤드를 지나쳐 앞으로 향했다. 그녀를 뒤에 두고 한 발 한 발 떼는 그의 걸음이 가없이 처량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윈이 그 문을 나서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 같은 건 없었다. 작은 공방 안에 외로이 남겨진 것은, 허무함에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에젤드의 흐느낌 소리뿐이었다.
털썩. 떨리는 무릎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에젤드는 흘러내리는 눈물도 다 닦아 내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넋을 잃은 채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 내려 두 손을 꼭 그러쥐었다. 힘이 바짝 들어가자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이제는 또 그 떨림을 멈추려고 한쪽 손으로 다른 손을 덮어 잡았다. 그러다 무심코 손등에 눈길이 닿자 외려 더 서글퍼졌다. 그의 마지막 인사가 아릿하게 새겨진, 그의 첫 눈물이 쓰리게 스민 손등 위를 다섯 개의 손가락이 차례로 지나며 애틋이 매만졌다. 턱 끝이 바르르 떨려 오자 입술을 꼭 맞다물고, 에젤드는 행여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까 입을 막았다.
치맛자락이 스치는 기척이 있었다. 에젤드의 몸이 바싹 굳었다. 이전처럼 그 기척이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져 주기를 기다리는 듯 그녀는 울음을 꾹 참고 그 자세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너 우니?”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머니는 방 한구석에 박히듯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에젤드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라고 한들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에젤드는 침대로 와 걸터앉은 어머니에게 물기가 흠뻑 밴 눈길을 흘끗 던졌다.
어머니가 눈물 때문에 볼에 달라붙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어머니…….”
그제야 에젤드는 얼굴을 들어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자니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 한 줄기가 또 한 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런 익숙지 않은 물음은 에젤드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단지 눈물이 가득 찬 눈을 빠르게 깜박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망설였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동정 어린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이 물러지는 모양이었다. 에젤드는 가슴속에 꼭꼭 감추어 둔 말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꺼내어 보았다.
“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오!”
그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탄식을 내뱉자, 격앙된 반응의 이유를 알 길이 없는 에젤드는 겁먹은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꾸중하듯 말했다.
“제발 테사, 그만! 자질구레한 연애사는 네 언니 얘기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런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네 언니 오빠들 혼사 문제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제발 아가, 알아서 하렴.”
어머니가 지겨운 이야깃거리에서 달아나려는 것처럼 앉은 자리에서 재게 일어나자 에젤드 역시 그녀를 따라 급히 일어섰다. 어머니는 싫증과 짜증이 뒤섞인 낯으로 눈을 꼭 감은 채 에젤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복잡한 일들이 끝나면 얼마든지 들어 주마. 엄마 좀 이해해 다오.”
어머니가 지체하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기자, 그렇지 않아도 상한 속이 더욱 쓰려진 에젤드는 어머니의 등 뒤로 잔뜩 실망한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사람인지도 안 물어보세요?”
흔히 들어 본 적 없던 막내딸의 어투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나. 차분함을 되찾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쉬고는 보다 평온해진, 아니 평온해지려 노력하는 얼굴로 딸을 돌아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가 물었다.
“좋은 사람이니?”
에젤드는 작은 희망 같은 것을 품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사람이에요.”
“그럼 됐다.”
희망 같은 그것은 금세 싸늘히 사그라졌다. 어머니는 곧 다시 등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러더니 문득, 미안해서인지 안쓰러워서인지 고개를 돌려 에젤드를 다정히 바라보고는 한결 잔잔해진 음성을 남겨 놓고 발을 돌렸다.
“테사, 엄만 네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