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서 길을 찾다
인류는 언제나 ‘더 나은 제도’를 찾아왔다. 완벽한 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이념이든 역사와 현실 속에서 보완과 진화를 거듭해 왔다. 자본주의 역시 그 여정에 있는 체제다. 나는 최근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보며, 제도가 지닌 본질적 한계와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지적 투쟁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 원리에 뿌리를 두고 출발했지만, 그 순수한 형태는 이미 오래전에 진화의 궤도로 들어섰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조차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에서 출발했으며, 본질적으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보완적 사유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다양한 철학과 사상의 실험대 위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그림자 : 구조적 불균형
오늘날 자본주의는 과거의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거쳐 디지털플랫폼 자본주의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화 속도만큼이나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익부 빈익빈’ 구조다. 자본은 더욱 빠르게 집중되고 있으며, 기술은 소수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로의 회귀라는 회색의 유토피아를 선택할 수 없다.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는 생산성의 정체, 개인의 창의성 억제, 국가 독점의 부작용이라는 더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념은 결코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조정과 설계가 필요한도구일뿐이다.
복지, 자본주의를 구할 키(Key)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해법을 ‘복지’에서 찾는다. 단, 여기서 말하는 복지는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주어지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보편적 복지는 듣기에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그 효과성이 희석되기 쉽고,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도 한계가 있다.
대신 지금 필요한 것은 디테일하고 정밀한 ‘선별적 복지’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보편화가 아니라 맞춤형 개입을 통해 완화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 취약 계층, 노동시장의 경계에 선 이들에게 선택적으로 자원을 집중하는 복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닌 사회통합의 전략이자,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투자라고 본다.
이러한 방향은 단순히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장이 왜곡되었을 때 ‘정렬’해주는 적극적 개입을 의미한다.
제도의 완성은 없다, 그러나 진화는 멈춰 선 안 된다
모든 제도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그 제도를 끝내 파기할 것이냐, 아니면 보완하고 진화시킬 것이냐는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생산 시스템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때, 사회는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나는 ‘복지’가 그 전환의 핵심이라 믿는다. 그것이 단순한 지원을 넘어, 인간 중심의 경제로 나아가는 다리가 될 때, 자본주의는 또 한 번의 진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