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준비라고 믿었던 나의 욕심
미국에 가기 전, 나는 문제집부터 샀다. 아이를 위한 준비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준비였다.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잔뜩 담았다. 수학, 국어, 과학, 사회... 한국에서 하던 진도가 끊기면 안 될 것 같아서.
한글책도 한가득 샀다. 돌아올 때의 학년을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읽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불안’을 아이의 책들로 채우고 있었다.
초2 때부터 영어와 수학 모두 대치동 학원에서 5학년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한국 교육의 선행 속도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어디까지 해놓아야 할지 더 불안했다.
어느 날, 대만 주재원으로 다녀온 한 선배가 말했다.
“거기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한국 공부까지 시키는 건 아이에게 가혹한 것 같아.“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맞다. 이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엄마인 내 욕심이었다.
낯선 나라, 낯선 학교, 낯선 친구들. 말도, 문화도, 모든 게 다른 곳에서 아이 하나가 버텨내야 할 시간.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 일인데, 나는 거기에 ‘한국에서 하던 만큼’이라는 기준을 얹으려 했다.
이런 말을 해주는 선배가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내 욕심으로 한가득 사둔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 아이도 고마웠다. 이제 책장의 책은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 읽고 싶을 때 읽는 책으로 바꿨다. 대신, 다른 걸 떠올렸다.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용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 낯선 도시의 눈부신 햇살과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들.
어쩌면 이번 미국 생활에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문제집 한 권이 아니라 그런 경험들일 것이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내가 진정으로 아이게게 바랐던 것은 많이 웃고, 많이 부딪히며, 단단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내 불안을 조금 더 내려놓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아이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아이를 위해 정말 필요했던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주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