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응급의학과
어제밤 (오늘밤이라고 해야되나?) 에는 응급실에서 세 환자의 죽음을 보았다.
첫번째 환자는 요양병원에서 전원 온 고령의 남자 환자로, 내원시 사망한 상태였고 동반한 가족들 (아들 둘, 딸 하나) 이 CPR을 원하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사망선고를 하지 않고 새벽에 힘들게 여기까지 온 이유가 의아했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CPR을 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꽤 많은 경우에 CPR이 전혀 도움이 안될 것 같은 환자에게 (가족들이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CPR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힘든건 상관없는데, 평화롭게 임종하실수도 있었던 분이 심장이 다시 뛰고, 여기저기 굵은 관을 꼽은 상태로 중환자실에 가는 것을 볼때마다 '이게 최선인가? 더 좋은 시스템은 없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가족의 경우 오늘 사망하신 분이 가족 전체를 책임지는 가장인 시대가 있었을테고, 지금은 장성한 세 자녀를 어릴 때부터 뒷바라지하는게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한 아버지였을 수도 있고, 아들 딸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친숙한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오늘 세 자녀분들의 슬퍼하는 얼굴을 보고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어느 스타일이셨든 좋은 아버지이셨던 것 같다.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만드신 분이 말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다가 상태가 나빠져서 새벽에 근처 응급실로 급하게 이송되고, CPR 실 차가운 철제침대 위에서 사망선고를 받는 것이.... 아쉽다.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게 다라는 사실이, 그냥 아쉽다.
두번째 환자는 상당히 덩치가 큰 젊은 남자 환자였다. 여자친구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깨보니 환자가 숨을 안쉬는 것 같아서 119에 신고했고 응급구조사분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심정지 상태라서 CPR을 하면서 들어왔다. 다같이 들어가서 열심히 CPR을 하고 있던 중 부모님과 친구 몇명이 도착했다. 40분 넘게 CPR을 했지만 한번도 리듬이 돌아오지 않아서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CPR을 중지했고, 부모님께 설명을 드린 후 사망을 선고했다. 어머님은 그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아들이 방금 죽은 사람의 얼굴이라기 보다는,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에 중대한 결함을 발견한 상사의 얼굴이었다. 그는 울고 있는 친구들 앞으로 가서 한명 한명 눈을 보면서 이 말을 남겼다.
"너희들이 죽였다. 평생 기억해라."
아마도 아들의 인생이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의 친구들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친구들도 기억하겠지만, 왠지 나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마지막 세번째 환자는 근무가 끝나가는 시점, 새벽 5시반 정도에 들어왔다. 병원 바로 앞 사거리에서 승용차가 신호를 받고 유턴을 하는데, 오토바이가 신호를 무시하고 승용차 좌측으로 직진을 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승용차 아래 깔리는 사고였다. 경찰 두분과 운전자가 같이 왔는데, 외상이 심해서 CPR 하는동안 한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되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선고를 했다.
운전자는 깔끔한 정장차림을 한 중년 남자였다. 아마 아침 일찍 출근을 하던 중에 사고를 낸 것 같았다. 이런 경우에는 사고를 냈다고 해야 할까, 당했다고 해야 할까. 운전자는 자기 신호를 받고 유턴을 했지만, 더 주의깊게 봤다면 뒤에서 오는 오토바이를 보고 정지했을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하는걸까. 차 열쇠를 손에 쥐고 황망하게 CPR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운전자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사람은 이제 평생 자신을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살게 될까.
오늘은 근무가 끝나고 씻은 다음인데도,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속이 어지럽다. 나는 어떤 식의 죽음을 맞게 될까? 내 가족들은 내가 죽은 방식에 대해서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만족할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겠지만, 죽음을 볼때마다 오늘처럼 선연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무뎌져서 별 느낌이 없는 내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