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밤턴의 치명적 약점(들)

2006년 4월 응급의학과

by 외과의사 이준서

응급실 밤턴이 시작됐다. 낮턴은 아침 7시부터 저녁7시까지 근무하고, 밤턴은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를 한다. 똑같이 12시간 근무지만, 많이 다르다. 우선 낮턴은 정상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니까 바이오리듬 차원에서는 좋은데, 환자가 정신없이 많다. (물론 가끔 널럴할 때도 있지만, 절대로 말로 표현하면 안된다. 이렇게 글로 쓰는 것 자체가 죄스러울 정도이다.) 반면 밤턴의 경우 리듬이 바뀌어서 상당히 괴롭다. 졸리지 않은데 눕는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이라고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며칠 지나면 적응이 되겠지. 그래도 낮턴에 비해서는 환자가 상당히 적다.


밤턴과 낮턴이 바뀔 때는 낮턴이 24시간 근무를 한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잠을 안자고 근무를 하는 것이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는 걸까?? 그래도 의사들은 지성인 집단이라고 믿고 병원에 들어왔는데, 24시간 근무는 너무 행정편의주의이다. 낮턴과 밤턴 인턴들의 바이오리듬을 고려해서 일주일간 근무시간을 점진적으로 조절하진 못하더라도, 24시간 근무는 아니잖아!


그래도 나는 인턴이라서, 하라면 그냥 해야 된다. 그래서 오늘아침까지 24시간 근무를 했다. 밤에 잠깐씩 눈을 붙이기는 했는데, (이것도 수면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총 수면시간은 40분 정도 밖에 안된 것 같다.


처음 밤턴을 서보면서 느낀 것은, 술 마신 사람들이 많이 온다. 아니, 술을 마셨으면 집에가서 이불 덮고 잠을 잘 것이지 왜 신성한 병원을 오는 거야? 24시간 근무를 하고 나서 일기를 쓰다보니 평소보다는 좀 공격적이 되는구나. 술마시고 오는 이유도 다양하다. 오늘 만난 사람들만 해도 술마시고 넘어져서 머리가 찢어진 사람, 음주운전 단속이 됐는데 측정을 거부해서 채혈하러 온 사람, 그리고 옆 테이블과 싸움이나서 주먹으로 입술을 맞고 앞니가 두개가 다 부러진 사람... 이렇게 3명이 있었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사회는 이렇게 술에 관대한 걸까? 오늘밤 우리병원에 이렇게 3명이 왔다는 의미는, 전국 수백개의 응급실에는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술 취해서 방문했다는 뜻이다. 그 환자들의 부상도 문제지만 의료진, 경찰, 환자들과 주먹다짐한 다른 사람들, 환자들의 가족... 생각해보면 피해 범위가 엄청나다. 그런데도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억지로 술을 먹이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고, 매년 한두명의 사망자까지 나온다.


술 마신 사람들의 응급실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이런 곳이 있다면, 여기서 일하겠다는 의료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낮턴과의 또 한가지 차이점은, 1년차들을 깨우기가 너무 어렵다. 오늘 새벽 2시경에 우하복부통증 환자가 와서, 외과 1년차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다. 밤이니까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고 10분 간격으로 5번 전화를 했는데, 계속 통화가 안됐다. 응급의학과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숙소에 가보라고 해서, 전공의 숙소에 쓰러져있는 외과 1년차를 찾아서 겨우 깨웠다. 한 시간을 고생고생해서 겨우 보고했더니 환자도 안 보고 한다는 소리가... 'CT 찍어라' 였다. 이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이제는 허탈하지도 않다.


신경질내고, 전화 안받고, 환자 대충대충 보는 1년차들에게 화가 나고 서운한 마음이 들려고 하다가도, 동태눈깔을 하고 머리는 다 떠서 새벽에 컴퓨터 앞에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짠해진다. 나도 내년에 저러고 있겠지.


그래도 이제 반 지났다. 밤턴 2주동안 부디 큰 사고 없기를... 응급실만 끝나면 좀 널럴한 과니까, 날씨도 풀리니까, 여러 모로 좋아질 것 같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11화오지마라 어지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