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마지막날

2006년 4월 응급의학과

by 외과의사 이준서

응급실 마지막날 근무가 끝났다! 호흡기내과 끝날 때는 기쁘기도 하고 (일에 적응됐는데 다른 일을 배워야 한다는게) 아쉽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응급실이 끝나니까 그냥 기쁘기만 하다. 후반기에 한번 더 응급실을 가긴 하지만, B병원은 상대적으로 작은 병원이고, A병원보다 환자도 적을테니 어떻게보면 인턴 1년동안 가장 힘든 한달을 무사히 끝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배운 중요한 레슨 한 가지가 있다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엄청 안 좋을 것 같았던 환자도 기본적인 처치만으로 극적으로 좋아지기도 하고, 별 문제 없어 보이던 환자가 갑자기 넘어가는 경우도 몇 차례 봤다. 어쩌면... 응급실이 인턴 근무중 가장 힘든 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턴을 시작하자마자 젊은 남자가 골절로 왔다. 자전거를 타다가 다른 자전거와 충돌을 했는데, 얼굴도 여기 저기 긁혀있었고 무엇보다 다리 각도가 이상했다. 앰뷸런스에서 내릴때부터 환자는 목이 쉬어라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중증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이 붙어서 이것저것 초기 처치를 했다. 진통제를 정맥주사로 투여했는데도 별다른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정형외과 1년차가 와서 먼저 환자를 보고 기본 엑스레이를 처방했다. 사진을 보니 까막눈인 내가 봐도 뼈가 거의 60도 각도로 어긋나있는게 보였다. 3년차 선생님이 내려와서, 나와 1년차 선생님이 조수를 하고 3년차 선생님이 처치실에서 골절에 대한 reduction (정복, 뼈를 맞추는 것)을 했다. 한달 내내 조수를 못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조수를 했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정형외과 3년차 선생님은 덩치가 좋고 머리가 짧은 전형적인 마초 느낌의 선생님인데, 이전에 몇번 응급실에서 뵜던 분이다. 처치실에서 정복을 시작하기에 앞서 환자분에게 설명을 했다.


'지금부터 손으로 어긋난 뼈를 맞출건데, 진통제를 추가로 드리고 하겠지만 엄청나게 많이 아프실거에요. 조금만 잘 견뎌주시면 잘 끝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저런 설명하는걸 들었지만, '엄청나게 많이 아플거다'라고 설명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환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추가 진통제가 들어가고 나서, 3년차 선생님이 나와 1년차에게 어디를 어떻게 잡으라고 지시를 한후, 다친 다리를 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환자는 처음에 들어올때보다 3배정도 볼륨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환자가 느끼고 있을 고통 때문인지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3년차에게 '제발 빨리 끝내주세요... 저러다가 환자 죽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입을 다물고 시킨일만 하고 있었다.


한 5분? 10분? 정도 지났을까, 3년차와 1년차, 나, 그리고 환자 모두 땀이 흠뻑 젖은 상태로 처치가 끝났다. 이 시점에 환자는 끅끅 울고 있었는데, 처치가 끝나고 3년차가 '고생 많으셨어요. 엑스레이 찍어봅시다' 라고 말하니 환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에이 씨발... '


그러자 3년차가 장갑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나가면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씨발이다.'


나에게 이 대화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평가를 받는 사람이고 하루하루를 조심하면서 보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3년차의 의연함(?)이 묘하게 보인걸까? 지금까지는 정형외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었는데, 이 처치를 보고 나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엄청난 근력이 필요하다. 괜히 정형외과 선생님들이 다 씨름선수 같이 생긴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환자의 고통에 무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전신마취가 된 환자를 수술하는 게 아니라, 환자에게 '엄청나게 많이' 아플거라고 설명한 뒤에 부러진 뼈를 맨손으로 맞춘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과를 정할 때 다들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응급실 끝나기 전에 정형외과 처치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근무를 모두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벌써 4월이고, 날씨도 많이 풀렸고... 응급실도 끝났다. 5월은 재활의학과인데, 상당히 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한달 동안 버릇이 돼서 그런지, '다음달은 좀 널럴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될것만 같다. 뭐, 어디서 무슨일을 하든 이번달보단 나을 것이다. 그리고 벌써 두달이 지났다! 칭찬해주는 사람은 하나 없지만, 스스로 칭찬을 하며 숙소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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