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된 도도새와 칼바리아 나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화요일 밤, 도심의 소음이 잦아든 골목 끝자락에 '잡학관(雜學館)'이라는 간판이 낮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은 메뉴판이 따로 없었다. 그저 주인장 마음대로 내놓는 계절 안주 하나와, 손님들이 들고 오는 '쓸데없지만 근사한 이야기'가 일종의 통행세처럼 은밀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낡은 목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래된 종이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이곳만의 기묘하고도 아늑한 공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가 멸종한 진짜 이유 말입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뗀 건 고고학자 박 교수였다. 그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은 돋보기를 치켜쓰며 잔에 담긴 독주를 한 모금 천천히 들이켰다. 평소라면 대학 강의실의 딱딱한 교단 위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이곳 잡학관의 조명 아래서는 모든 지식이 권위의 옷을 벗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변모하는 마력이 있었다.
"단순히 인간들이 무자비하게 잡아먹어서가 아니에요. 사실 녀석들은 너무나 평화로운 낙원에 살았던 겁니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수만 년을 보내다 보니 날아야 할 절박한 이유를 잊었고, 결국 날개는 장식처럼 퇴화해버렸죠. 인간이 섬에 발을 들이고 그들과 함께 온 돼지나 쥐들이 무방비 상태인 도도새의 알을 먹어치울 때조차, 녀석들은 도망치거나 저항할 줄을 몰랐어요. 무지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미워하는 법 자체를 배우지 못한 채 사라진 겁니다. 진화의 관점에서는 실패일지 모르나, 존재의 관점에서는 지독하게 순수했던 셈이죠."
바 안쪽에서 조용히 맥주잔을 닦으며 대화를 경청하던 식당 주인 성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미워하는 법을 몰라 사라졌다니, 멸종의 역사치고는 너무나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유군요. 하지만 교수님, 기록을 보면 요리사의 관점에서 도도새는 결코 매력적인 식재료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항해사들의 일지에 따르면 고기가 너무 질기고 냄새가 고약해서 '구역질 나는 새'라는 뜻의 '왈흐포겔'이라 불릴 정도였죠. 그런데도 단 100년 만에 씨가 말랐다는 건, 맛이라는 실용적 가치조차 압도해버린 인간의 파괴적 본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구석진 자리에서 노트북 화면의 푸른 빛에 얼굴을 비추던 시나리오 작가 지우가 타자 치던 손을 멈추고 끼어들었다.
"그 비극이 도도새 한 종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게 더 가슴 아픈 지점이에요. 그거 아세요? 도도새가 사라지면서 모리셔스 섬의 '칼바리아 나무'도 함께 멸종 위기를 맞았거든요. 이 나무의 씨앗은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반드시 도도새의 강력한 소화기관을 거치며 마모되어야만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었죠. 도도새가 멸종하자 세상에 남은 칼바리아 나무들은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한 채 수백 년 동안 홀로 늙어 죽어갔어요. 누군가의 완전한 소멸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존재의 생존 시계까지 멈춰 세워버린 거죠. 생태계라는 건 결국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들로 엮인 거대한 직조물 같아요."
테이블 위에는 어느새 성진이 갓 부쳐낸 따끈한 감자전이 놓였다. 창밖의 빗소리와 팬 위에서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어오며 묘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결국 세상에 정말로 쓸데없는 지식은 없네요."
지우가 감자전 한 조각을 입에 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었다.
"도도새와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 속 주인공이 왜 그토록 고독해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자신은 땅에 발을 붙인 채 날지 못하는 비극적인 영혼이었던 거죠. 잡학이라는 건 가끔 이렇게 제멋대로 흩어진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곤 하네요."
밤은 깊어갔고, 잡학관의 대화는 도도새의 비극에서 시작해 고대 항해사들이 의지했던 별자리의 기원, 18세기 프랑스의 기괴한 화장실 문화, 그리고 인간의 뇌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억을 정교하게 왜곡하는 방식까지 쉼 없이 뻗어 나갔다.
지식은 파편으로 존재할 때는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이 좁은 식당에 모여 누군가의 삶과 경험에 닿을 때 비로소 따뜻한 서사가 된다. 잡학관의 노란 불빛은 새벽의 푸른 기운이 골목을 덮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세상이 '무용(無用)하다'고 치부해버린 모든 작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숨 쉬게 해준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