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우주를 유영하는 먼지들의 식탁

창백한 푸른 점

by 티모시

비가 그친 잡학관의 창밖으로는 씻겨 내려간 듯 투명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성진은 오늘 안주로 바지락 술찜을 준비했다. 냄비 안에서 입을 벌린 조개들이 뿜어내는 바다 향이 가게 안을 채울 무렵, 천문학 잡지를 가방에 꽂은 젊은 대학원생 민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지우 작가님. 오늘은 다들 일찍 모이셨네요."


민우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펼쳤다. 그곳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점 하나가 박힌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창백한 푸른 점'이에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지구를 향해 카메라를 돌려 찍은 사진이죠. 칼 세이건이 이 사진을 보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아는 모든 이들, 우리가 사랑한 모든 사람이 저 아주 작은 점 속에 살았다고요."


PaleBlueDot.jpg 창백한 푸른 점


성진이 바지락 술찜을 테이블 중앙에 놓으며 대화에 합류했다.


"그 작은 점 안에서 우리는 아웅다웅 살고 있군요. 그런데 민우 씨, 보이저호에는 금으로 만든 레코드판이 실려 있다면서요? 외계 지성체에게 보내는 인류의 인사라고 들었습니다."


민우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보이저 골든 레코드'죠. 55개 언어의 인사말, 지구의 각종 소리, 그리고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까지 담겨 있어요. 심지어 당시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의 뇌파 데이터도 들어 있죠. 누군가에게 가닿을지 모르는, 혹은 수십억 년 동안 아무도 듣지 못할 인류의 가장 정성스러운 편지인 셈입니다."


지우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수십억 년이라니요. 어쩌면 인류가 멸종한 뒤에도 그 레코드판은 우주를 떠돌겠네요. 발신인은 사라졌는데 편지만 남은 격이죠.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만약 외계인이 그걸 발견한다 해도, 우리와 '재생 방식'이 다르면 어떡하죠? 그들에게는 소리라는 개념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박 교수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레코드판 커버에는 수소 원자의 에너지 상태를 이용한 설명서가 그려져 있습니다. 우주 공통어인 수학과 물리를 이용한 거죠. 하지만 지우 작가 말대로, 그들이 이 정교한 신호를 '음악'이나 '인사'로 이해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어쩌면 그저 고대 문명의 이상한 유물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죠."


민우가 덧붙였다.


"더 슬픈 건 거리예요.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만도 수만 년이 걸리죠. 우리가 보낸 안부 인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우리라는 존재는 이미 우주의 먼지가 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요. 1974년 아레시보 메시지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전파 망원경은 우주를 향해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죠."


성진은 조개껍데기를 건져내며 나직하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 그건 어쩌면 인간이 가장 고독하기 때문에 부리는 부리부리한 고집 같기도 하네요. 마치 이 식당 같아요. 누가 올지도 모르고, 우리가 나누는 이 이야기가 내일이면 잊힐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빈 술잔을 채우고 대화를 이어가니까요."


"재미있는 건 말이죠,"


민우가 바지락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주 너머만 바라보지만,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도 별이 폭발하며 남긴 잔해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셈이죠. 결국 우주로 신호를 보내는 건, 고향을 떠나온 먼지들이 다시 고향을 향해 부르는 노래일지도 몰라요."


대화는 어느덧 보이저호의 궤적을 넘어, 양자 얽힘의 신비와 우리가 타인과 눈을 맞출 때 발생하는 아주 짧은 전자기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갔다.


광활한 어둠 속에서 홀로 유영하는 보이저호처럼, 잡학관의 손님들도 각자의 고독한 궤도를 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들은 '잡학'이라는 공통의 주파수를 맞추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아주 작은 식당,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은 우주의 정적을 깨는 가장 따뜻한 소음이었다.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제1장: 멸종된 새와 잊힌 이름들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