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거리에서 자라나는 이해

by 미라니

우리는 같은 집에 산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냉장고를 열고

같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더 멀다.

아들은 방문을 닫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다.


물소리와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게임 소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신호처럼

희미하게 겹친다.


예전 같으면

“게임 좀 그만해.”

“숙제는 했어?”

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텐데

요즘 나는

한 번 더 멈춘다.


그 말이

정말 필요한 말인지,

아니면 내가 불안해서 꺼내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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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라는 건

언제나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까워야 사랑이고,

붙어 있어야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들이 한 발 물러서면

나는 두 발 다가갔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릴 때

엄마와 거리가 필요했었다는 걸.


말을 다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감정을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시절 나는

내 방 문을 닫고 음악을 들으며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저녁이었다.

아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 이거 좀 봐.”

별것 아닌 영상 하나였다.


게임 장면이었고,

나는 규칙도 잘 모른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하고 물었다.


아들이 설명을 시작했다.

손짓이 커졌고,

말이 빨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알았다.


아들은 나를 밀어낸 게 아니라

자기 세계를 설명할 언어를

찾고 있는 중이었구나.

우리가 멀어진 게 아니라

서로의 세계가 넓어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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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가까이 붙어 있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자라나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아들의 하루를 다 알고 싶어 했다.

지금의 나는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고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모르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니까.

아들은 여전히

툭하면 예민해지고

말투가 날카로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나는 예전처럼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지금 이 아이는

엄마에게 맞서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씨름 중이라는 걸.


나는

그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다치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자리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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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예전보다 덜 잔소리해서 좋아.”


그 말이

칭찬인지, 농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웃었다.


“엄마도 연습 중이야.”

그렇게 대답했다.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 한마디를 듣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는지.


서로의 거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어떤 날은 너무 멀고,

어떤 날은 다시 부딪힌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이 거리가

우리 사이를 벌리는 틈이 아니라

각자의 뿌리가 자랄 공간이라는 걸.


아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넓혀 가고,

나는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세워 가고 있다.


사랑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지켜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을 줄였더니

눈빛이 늘었고,

잔소리를 줄였더니

기다림이 늘었다.

기다림이 늘자

조금씩 이해가 자라났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해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라는 나무 같으니까.

서로의 거리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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