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방문을 닫는 소리가
요즘 들어 유난히 크게 들린다.
쾅, 하고 닫힌 문 앞에 서 있으면
그 문이 단순한 나무판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세워진 벽처럼 느껴진다.
예전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급식이 어땠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쏟아내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물으면 짧게 대답한다.
“몰라.”
“그냥.”
“아니야.”
대화는 자꾸 끊긴다.
나는 자꾸 서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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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 드디어 사춘기구나’
하고 이해하려 했다.
책에서 읽은 대로,
강연에서 들은 대로,
사춘기는 독립의 시작이라고.
엄마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
자기 세계를 만드는 시간이라고.
그래서 참아보려고 했다.
잔소리도 줄이고,
괜한 질문도 삼키고,
말투도 부드럽게 해보려고.
그런데 이상했다.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속에서 자꾸 무언가가 올라왔다.
섭섭함.
서운함.
괜히 억울한 마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삼켜진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들만 사춘기가 아니라는 걸.
나도 사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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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뒤로
나는 늘 어른이어야 했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면 안 되고,
말이 거칠어지면 안 되고,
아이보다 먼저 울면 안 되고,
아이보다 더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
그게 엄마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아들이 나를 밀어내기 시작하자
내 안에 숨겨 두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왜 나를 안 봐줘?”
“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나는 아이를 키우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필요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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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나를 밀어내는 만큼
나는 더 붙잡고 싶어졌다.
“엄마한테는 말해도 되잖아.”
“왜 엄마한테 숨겨?”
“엄마가 제일 네 편이야.”
그 말 속엔
사랑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이 아이가 나 없이도 괜찮아질까 봐.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왜 자꾸 나를 애처럼 대해?”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애처럼 대한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나는 늘 그 아이를
‘내 품 안의 아이’로만 두고 싶어 했다.
그 아이는 벌써
내 키를 넘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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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혼자 부엌에 앉아 있었다.
싱크대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놓아주는 연습을 한 적이 없구나.
첫 걸음을 떼던 날도,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도,
학교에 들어가던 날도
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손을 놓아야 하는 시간인데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에게가 아니라,
준비되지 못한 나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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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사춘기가 있다.
아이를 키우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시간들이
어느 순간 되돌아와 묻는다.
“너는 누구니?”
“너는 무엇을 좋아했지?”
“너는 왜 이렇게 불안하니?”
나는 오랫동안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았다.
누군가의 보호자,
누군가의 뒷모습,
누군가의 뒷정리.
그런데
아들이 나를 조금 밀어내자
나는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비어 있는 나를.
그래서 요즘은
아들이 방에 들어가면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간다.
책을 펼치고,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든다.
예전 같으면
“뭐해?” 하고 문을 열었을 텐데
이제는 문을 닫아둔다.
그 아이가 자기 세계를 만들 듯
나도 내 세계를 다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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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사춘기는
독립의 신호라면,
엄마의 사춘기는
회복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를 다시 찾는 시간.
나는 아직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완벽해질 생각도 없다.
다만,
아들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만큼
나도 나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고 싶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를 덜 붙잡고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도록.
엄마도
성장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