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요즘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묻더라도 짧게 대답한다.
그 침묵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했다.
나는 자꾸만
그 침묵을 깨고 싶어졌다.
괜찮냐고 묻고,
무슨 일 있냐고 묻고,
말 좀 하라고 재촉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침묵은 언제나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말을
내가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아들은 원래
감정을 쉽게 밖으로 꺼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잠시 마음 안에 두었다가
스스로 정리한 뒤에야 말을 꺼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너무 자주
지금 당장 말해주기를 요구했다.
엄마니까 알아야 한다고,
엄마니까 말해줘야 한다고.
어느 날 저녁,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무 말 없이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장면을
한참 마음에 담아두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안에는
“나 여기 있어.”라는 신호가 담겨 있었다.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방식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묻는 질문을 줄였다.
대신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같은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느끼는 시간.
아들은 여전히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가끔은
짧은 문장 하나를 툭 던지듯 건넨다.
별것 아닌 이야기,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말.
그럴 때 나는
괜히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그 말을 받아둔다.
그것만으로도
아들은 충분히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들의 침묵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정도 거리가 좋아.
지금은 이만큼의 말이면 충분해.
그걸 알아차린 뒤로
침묵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말하지 않는 시간도
관계의 일부라는 걸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들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많은 말이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이해가
천천히 쌓이고 있는 것 같다.
침묵은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말을 고르고 있는
조용한 준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고
함께 지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