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보다 먼저 감정이 앞설 때가 있다.
분명 차분하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달라지고,
표정이 굳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아들의 얼굴이 먼저 변한다.
말수가 줄고,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 나는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지금 이 말이
아들을 향한 설명이 아니라
내 마음의 분출이라는 걸.
화는 늘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다.
정리되지 않은 방,
대답 없는 “응”,
약속했던 시간보다 늦어진 귀가.
그 모든 것들은
사실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날의 피곤함,
쌓여 있던 걱정,
엄마로서의 불안이
그 위에 겹쳐질 뿐이다.
나는 종종
아들을 향해 말하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렇게 키워도 괜찮은 걸까.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 걸까.
그 질문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화라는 모습으로 먼저 튀어나온다.
예전에는
화가 나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이면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말했고,
바로 지적했고,
바로 고치려 했다.
하지만 남은 건
아들의 침묵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연습을 시작했다.
말이 올라오는 순간
입을 열지 않고
숨을 먼저 고르는 연습.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인지,
지금 꼭 해야 하는 말인지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
화내지 않고 말하는 법은
목소리를 낮추는 기술이 아니라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알겠다.
어떤 날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잠든 아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낮에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그 얼굴 앞에서는
조용해진다.
아들은
내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순간 더 분명해진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화내지 않는 엄마는 아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후회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그 후회가
다음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화내지 않고 말하는 법을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과 계속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연습이 언젠가는
아들과 나 사이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남겨두게 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