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4층, 나는 굶고 아주머니는 물었다
금식 4일차, 침대 좀 밀지 말아주세요
불행히도 무통 주사는 나와 맞지 않았다.
통증은 그대로였고, 구역질까지 났다.
금식도 계속됐다. 그 와중에 나와 머리를 맞댄 할머니는 쉬지 않고 딸과 대화를 이어갔다.
말이 대화지, 반쯤 화를 내고 계셨다.
맞은편 아주머니가 눈치를 몇 번이나 줘도, 모녀는 막무가내였다.
설상가상으로 자꾸 내 침대를 밀었다.
통증이 심해지는데, 금식 4일 차인 나는 침대 좀 밀지 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몸을 틀어야 그나마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반듯하게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비 오는 날 나 홀로 중얼거리는 수준 아닌가.
트로트, 피통, 그리고 의문의 4층
다음날부터는 화장실도 오가야 했고, 걷기도 해야했다.
피통을 달고 걷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입원 환자들은 외출은 커녕 다른 층으로의 이동도 쉽지 않았다.
해서 나는 내가 입원한 4층을 아주 느릿느릿 돌았다.
이쯤 되자, 조금씩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왜 나만 식사를 못하고 커피도 과일도 못 먹는 걸까?
왜 나만 피통 차고 링거 4~5개 달고 어그적거리고 다니는가?
그리고 왜, 모든 병실에서 같은 채널을 보고 있는가?
마치 병동 전체가 트로트 단체 관람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덕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안 봐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고, 퇴원 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행사 기획에 트로트 가수들을 섭외해 소위 대박 행사를 치르게 됐다.
그 시작은 이 병원 복도였다.
호기심 vs. 궁금증
내 궁금증은 같은 병실 아주머니의 호기심과 함께 풀렸다.
아주머니는 아침부터 내 침대 근처를 맴돌더니, 내가 어그적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자 피통을 가리켰다.
“무슨 수술을 했길래 피통을 찼어요?”
“아, 담낭 제거했어요.”
“그래서 밥도 못먹고? 아이고, 배고파 어째.”
“괜찮아요.”
“근데 왜 신경과층에 입원했어? 방이 없대?”
“신경과요?”
“응, 여긴 신경과 층이야. 외과는 위층이지.”
그 순간 머릿속을 맴돌던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께 들으니, 외과 병실이 전부 차서 신경과로 입원시켰다고 했다.
문제는 이 호기심 해소 이후였다.
간병인이 없는 아주머니가 자꾸 내 침대로 찾아오게 됐다.
몇 살이냐, 결혼했느냐, 애인은 있느냐 등을 물어보셨다.
그 즈음, 회사에서 보낸 화분이 도착했는데 회사명은 이미 확인하신 듯했다.
그 관심은 다소 지극(?)했는데, 그 이유는 내 첫 식사 시간인 저녁시간에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식판에 담긴 미음을 한술 뜨려는데 아주머니가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괜찮아요. 편히 식사하세요.”
아주머니는 내 쟁반 위에 덩그러니 놓인 미음 한 그릇을 보더니, 딱히 도와줄 게 없자 침대 끝에 앉으셨다.
“우리 아들이 있는데 아가씨보다 한 살 어려. 회사도 건실하고 애도 아주 착해. 내일 토요일이라 아들이 문병 올 거야.”
때를 맞춘 것인지 수다스럽던 모녀의 대화까지도 멈췄다.
나는 당황해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아... 결국, 노총각 아들이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