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주겠나

사람이니까요

by 제이

알렉산더 대왕과 철학가 디오제네스의 만남은 고전 철학을 통틀어 가장 회자되는 일화 중 하나일 것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도시 코린트에 방문하자, 정치인, 상인, 철학가 할 것 없이 모두가 두 팔 벌려 그를 환영했는데, 크레네이온 지구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던 디오제네스만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흥미를 느낀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넸고, "원하는 것이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디오제네스는 "당신이 내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주겠나"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크게 산 알렉산더 대왕은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제네스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가 디오제네스(est. BC 410-320)는 "냉소주의(Cynicism)"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냉소주의는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관습, 전통, 도덕, 법률, 제도 따위를 부정하며, 개인의 내재적, 천연적 욕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자칫 사회적 이단아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개념이라고도 생각되는데, 디오제네스는 특히나 냉소주의의 극단을 보여준 인물로, 극한의 무소유와 가난을 품고 길거리에서 자기로 된 술통 안에 살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이유로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냉소주의는 후에 보다 정제된 "스토아학파(Stoicism)"으로 거듭난다.

스토아학파는 온 우주가 이성에 따라 작동한다고 믿으며, '인간도 이에 맞춰 이성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관련하여 스토아학파에서 가장 강조하는 이념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에 신경을 끄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내적 평안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토아학파와 관련하여 최근에 꽤 흥미로운 서적을 발견했는데, 바로 <Moral Letters to Lucilius>, 국내에서는 <스토아 철학가의 편지>로 통하는 책이다.

이 책은 스토아학파 철학가 세네카(BC 4-AD 65)가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냈다고 알려진 124개 편지의 모음집인데, 구어체를 사용하는 데다, 각 편지 내용이 길지 않아,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초판이 1918년 인쇄되어, 현재 저작권 만료로, 온라인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14번째 편지, "On the Reasons for Withdrawing from the World", "세상에서 물러나는 이유에 대하여"였다. 어떤 연유로 사람이 도전에 소극적이고, 심한 경우 세상과 담을 쌓고 살게 되는지 서술한 글이었다.

세네카는 '인간은 모두 자기 육신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태어나며, 이를 평생 저버리지 않을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서두를 연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육신의 노예로 전락하면 안 된다. 우리는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라고 반문한다. 나아가, '육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우리를 둘러싼 걱정과 근심의 근원이다.'라고 주장하며, 불안의 이유를 세 종류로 정의하는데, 이 중 "갈망"은 보이지 않게 인간을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맹목적으로 부(富)를 쫓는 자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과오다.'라면서, '불안함을 조장하는 행위에서는 절대 행복을 찾을 수 없으며, 부를 늘리는데만 집중하면, 애써 쌓은 부를 사용할 줄 모르게 된다.'라고 일침 한다.


냉소주의와 스토아학파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사상이 바로 "금욕주의"이다.

어릴 적, 대략 10-15년 전, 한국에서도 법정스님이 집필한 서적 <무소유>가 인기를 끌며 금욕주의가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금욕주의를 실천함으로써 과도한 물욕을 잠재우고, 보다 이성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무한경쟁사회"는 두 말할 것 없이 금욕주의의 정반대 모습이다. 말하자면 "탐욕주의"에 가깝다.

물론, 수십 세기 이전에도 경쟁은 늘 존재했을 것이다. 세네카도 본 편지에서 언급하듯이, '여러 종류의 불안 중에서 우리를 가장 동요케 하는 것은 이웃의 출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은 끔찍한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다만, 가끔씩은 자신이 쌓아온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돈이든, 권력이든, 전문지식이든, 무차별적으로 쌓는데만 집중하면, 애써 쌓아 놓은 것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황당무계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종종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쌓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찰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에 필수적인 연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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