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우울함으로 공감대를 형성할까?

사람이니까요

by 제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을 항해하며 살아간다.

관계를 맺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공감이다. 상대와 나 사이에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관계는 출발한다. 서로의 취미, 취향 등에서 이어지는 경우가 보편적이나, 단순히 비슷한 상황, 비슷한 입장만으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입학, 입사 동기처럼 말이다.


일대일, 혹은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감대를 찾기 쉽다. 책, 음악, 영화, 시리즈, 유튜브 등 흔한 주제를 하나씩 소거해가다 보면, 꽤 빨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불특정다수를 상대로는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당연하다. 모두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유행하는 "스몰 토크" 화제나, 예능, 드라마 등으로 70-80% 정도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인생에 대한 푸념이나 고민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마주치는 문제에는 공통된 것들이 많다. 특히 성인이 되면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 예컨대 집, 자동차, 돈관리, 연애, 건강관리 같은 것들 말이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상대가 응당 가지고 있을 고민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다수를 상대로는 보통 이런 주제로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이미 언급했듯이, 이런 주제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무겁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사회생활을 해봤다면 으레 알 수 있다. 누군가 이런 주제를 꺼내는 진의(眞意)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해서라는 것을. 비록 개인의 문제를 언급하나,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자문을 구하는 것은 아님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껄끄러운 주제에 정도껏 성실한 답변을 제기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사회생활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면담이나 회식 자리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비슷한 화제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괜히 이런 질문들이 "상사가 물어보면 불편한 질문" 설문조사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이, '과연 이런 대화가 꼭 필요한가?'이다.

호주에서의 학부 생활을 되돌아보면,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그때는 모두가 어렸다는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아직 집이나 자동차 등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확실히 조금 이른 나이었다. 하지만, 그 점을 넘어, 당시에는 다수를 상대로도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것 같다.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딱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소수, 아니, 한 명이라도 괜찮다. 한 명이라도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대화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말했듯이 분명 나이의 영향도 있겠으나,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공감을 받기 힘든 주제는 아예 꺼내지도 않는 현상이 비교적 두드러지는 것 같다. 취미와 취향이라는 것은 자연히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마련인데, 거절, 무반응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점점 소수와의 대화, 특히 일대일 상황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상대가 소수이거나, 한 명이라면 내가 꺼낸 주제가 '실패'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개인의 취향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빠르게 화제를 돌리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의 차이를 수긍하면서도 다수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가 보다. 개인적인 주제를 꺼냈을 때 모두가 흥미를 잃는 상황을 만들기는 싫다 -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모순적이다.


윗사람이 우울한 주제를 던지는 것에 관하여 생각난 것이 있는데, 몇 달 전에 부서 담당 임원 분과 면담 시간을 가졌을 때, 매우 신선한 질문을 받았었다. 바로, "10년 후에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이었다.

갑자기 인성 면접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당황했다. 면담하는 모두에게 공통으로 물어보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말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 연구소답게, 내 부서 담당 임원 분은 과거 저명한 미국 대학의 교수님이셨다. 지도자 특유의 솔직함과 부성애가 자못 풍겼다. 부서 내에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분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잠깐 고민한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규모의 팀을 이끌어보고 싶다"라고.


돌아보니 그때의 그 질문이 참 좋았었다. 표면적인 정보가 아니라, 내면의 생각을 물었기 때문에. 부하직원과의 얕은 라포 형성을 위한 우울한 주제가 아니라, 그 직원의 잠재력과 포부를 엿볼 수 있는 심오한 주제였기 때문에.


나는 이런 주제를 자연스레 논의할 수 있는 관계를 꿈꾼다. 취향, 취미 같이 '실패가 두렵지 않은' 얄팍한 주제를 넘어,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상대 말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보편화되는 세상을 꿈꾼다.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 - 모두에게 더 이상 우울한 주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개인의 가치관에 대해 모두와 깊게 논의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철없는 욕심이겠지.

이전 10화어른스럽게 표현하는 법